난 파워 J형 인간이다. MBTI를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E와 I만 간혹 바뀔 뿐 NFJ는 한결같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길러진 부분도 있다. 일단 늘 체력이 달렸다. 놀 거 다 놀면서 막판 벼락치기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계획을 촘촘히 세워 조금씩 나누고 되도록 한 번에 실수 없이 꼼꼼히 처리하는 게 생존법이었다.
자기 일은 알아서 해왔던 K장녀답게 지금도 아이의 학교 일정을 중심으로 일 년치 여행, 중간중간 집안 대소사부터 하다못해 일주일치 장보기까지 미리 확인하고 계획한다. 회사 생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주간, 월 단위로 접근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익숙해진 습관이라 몸은 고돼도 마음이 이 편이 편하다.
이처럼 계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던 인간에게 뜻대로 되지 않는 요가의 세계란 얼마나 낯선 것인지!
물론 수련에도 목표가 있었다. 처음엔 그날 목표를 세웠다가 그다음엔 한 주, 그다음엔 월 단위였다. 몸의 변화가 시간과 비례하질 않으니 그다음엔 아사나를 목표로 예를 들면 시르사 아사나를 집중적으로 수련해 보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모두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가장 큰 변화는 작년이었다. 코로나 시절 요가가 삶의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상태라 열정이 과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기존 수련 외에 별도로 하타 심화를 더 들어가며 아사나 습득에 공을 들였다. 잃어버린 2 년을 메우고 요가를 취미 이상의 일로 해봐야겠다는 목표도 있었다.
그 계획은 망했다. 마음만큼 아사나가 빨리 늘지 않았고 욕심만큼 실망감도 커서 감정 변화가 심했고 조급해졌다. 호흡을 챙기라는 선생님의 말이 너무 한가하게 들려서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몸의 이상이 왔고 심화는커녕 원래 하던 수련도 줄여야 했다. 그때서야 요가에서는 이제껏 살아오던 방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체득했다.
작년 경험으로 올 해는 낫지만 습관의 힘은 어찌나 무서운지 여전히 자꾸 머리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정하기도 한다.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스몰 j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해야 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허락한 만큼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나가는 무계획의 여정. 내겐 몹시 낯설지만 매일 반복하면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겸손을 배운다.
계획은 없지만 불안보다는 기대해보려 한다. 매일의 수련이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올지 말이다. 딱히 철학을 말하지 않는데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생각의 변화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이 배움이 매트 밖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 감사하면서.
사실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계획적인 삶은 이미 무수한 균열을 만든 상태였으니까. 다만 그렇다고 그냥 흘러가게 둔다는 게 불안했을 뿐이었다.
당장 요즈음은 아무리 파워 J형 엄마라도 아이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실감 중이다. 요가가 없었다면 사춘기 아이와 훨씬 더 힘든 전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유행한다는 아이돌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첫 만남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사실 앞으로 네가 맞닥뜨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럴 거라고 속으로만 중얼거려 본다. 이 모든 게 수련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