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18
인간의 잔혹성은 분명 인간성을 해친다. 물론 잔혹한 범죄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나는 이것을 평범성으로 둔갑한 우리들의 잔혹성을 두고 말하려 한다. 우리 사회는 잔혹함에 대해 지나치게 무뎌져 있다. 잔혹성은 평범성으로 둔갑해 있으며,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잔혹한 일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강력범죄의 물리적 잔혹성에 치를 떨며 분노하지만, 이른바 '신상털기'나 '마녀사냥',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와 같이 비물리적인 잔혹성은 아무렇지 않게 방조하며 심지어 그것에 동조한다. 분명 일상화된 폭력과 차별로 인해 우리의 인간성이 무뎌진 탓이라고 믿는다.
흉악한 살인범에 뜨거운 공분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것을 '최대한 잔혹하게'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잔혹성에 불과하다. 각종 흉악범죄의 범인들을 옹호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들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우리의 인간성을 해쳐가면서까지 표현할 필요는 전혀 없다. 심지어 그러한 잔혹성의 표현을 평범한 인간의 마땅한 분노로 여기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어떠한 형태의 잔혹성도 우리의 인격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평범성으로 둔갑한 잔혹성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각종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지겹도록 사형제 부활에 관한 주장들이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주장들이 '타인의 인격을 잔혹하게 파괴한 사람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인격을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해'가 아니라 '나는 저 짐승만도 못한 죽어 마땅한 인간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어'로 들린다. 과연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인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그저 잔혹성에 무뎌져 비자연적으로 왜곡된 우리들의 모습일 뿐이다.
나는 많은 사회적·윤리적 규범들이 느슨한 예외를 허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엄격한 규범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성만큼은 예외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의 인격과 인권에 대해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인간이 아니게 될 순간을 예비하고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니게 될 순간은 가해와 피해 모두에 서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화된 잔혹성은 어떻게든 우리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놓고 등을 떠밀 준비를 하고 있다. 왜 우리는 자꾸만 스스로를 최소한의 인간다움에 구겨 넣고 있는가. 나는 최소한의 인간이 아니라 최대한의 인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