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
나는 어렸을 때 문구점에서 딱지를 훔친 적이 있고, 어린 강아지를 괴롭힌 적이 있다. 도덕성이 채 발달하지 않은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나쁜 짓을 저지른 적이 있다며 쿨하게 무마하기엔 그때의 기억이 주는 감각들이 너무나도 강하다. 그때 나의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고 얼굴에 달아오른 열이 얼마나 뜨거웠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덜덜거리던 손끝과 발끝의 떨림이 얼마나 서늘했는지가 기억 속 몇 장의 이미지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때의 나는 그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알았을까, 몰랐을까. 몰랐다면 그렇게 심장이 쿵쾅거렸을 리가, 얼굴에 뜨거운 열이 달아올랐을 리가, 온몸이 서늘하게 떨렸을 리가 없지 않았을까.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진 것이었을까. 그때의 문구점, 등교 시간, 준비물과 딱지를 사려는 친구들로 미어터지던 그곳, 친구들 틈에서 앞으로 맨 가방에 딱지를 하나씩 챙겨 넣던 나를 문구점 아저씨 아줌마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딱지를 챙겨 넣다 ‘하나 더’가 쓰인 딱지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계산대로 가져가 계산을 하고 딱지를 하나 더 챙겨가던 영악한 나를 그들은 알았을까, 몰랐을까. 개미를 짓이겨 죽이고 지렁이를 잘라 죽이던 내가 이윽고 어린 강아지를 괴롭히다 죄책감에 시달려 그날 하루 손끝과 발끝을 서늘하게 떨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문구점을 뒤로하고 책가방을 앞으로 맨 채 걸어 나오던 나의 터질 것 같은 심장과 열감은 화인(火印)으로 남아 나를 괴롭힌다. 어린 강아지가 다시는 우리 동네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음을 깨달았던 순간의 서늘함 역시 그렇다. 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때의 일들로 처음 알게 되었지만, 죄책감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것보다 더 무거운 죄책감의 온도가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죄책감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때로는 나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의 기능을 겸한다. 그것은 도덕성과 무관한 사소한 일상의 일들에도 적용이 되어서, 가끔 나는 끝없이 내 안에서 증식하는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불안 속에서 나는 서서히 정차하는 열차가 된다.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다시 출발. 나는 철로를 이탈하지 않는다. 그때의 일들이 철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철로는 아직도 그때의 온도를 간직하고 있다. 철로는 달아오르기도 하고, 서늘하게 식기도 한다. 나는 그 철로 위를 달리며 종종 그때의 심장 박동을 느낀다. 쿠궁 쿠궁, 평온한 질주에 몸을 맡기면 들리는 소리. 그 소리가 심장 박동이 되어 그때의 온도를 환기하게 되면, 나는 불안 속에서 서서히 멈춘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출발한다. 그런 방식으로 달린다. 나의 나날들은 그런 방식으로 운행된다.
즐겨보는 유튜버가 있다. 그 유튜버의 사랑스러운 어린 딸을 보며 귀여워한다. 오늘 올라온 영상은 딸과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10분 남짓의 영상이었다. 어린이날에 찍은 영상이 어버이날에 업로드되었다. 그 아이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그 아이는 그 영상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 유튜버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먼 훗날 그 아이가 아버지의 선물 같은 마음을 보고 느낄 감정을 건너다보다가, 그때의 내가 느낀 것들이 훗날의 나를 위해 남겨진 선물일 수 있음을 느낀다. 그때의 나는, 훗날의 나에게 선물을 남기고 있음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5월 5일의 마음과 5월 8일의 마음이 있다면, 나는 아직 5월 7일의 언저리에 있는 마음일 것이고, 5월 8일의 마음으로 가는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느끼는 마음일 것이다. 5월 5일을 지나온 사람은 5월 5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멈춰 뒤돌아보는 방법뿐이다. 철로는 이어져 있으므로, 나는 그때의 심장이 어떻게 뛰었으며 내 몸은 얼마나 뜨겁고 서늘했는지 느낄 뿐이다. 나의 기억은 폭력적일 만큼 친절한 방식으로 나를 멈춰 돌아보게 한다. 후진은 없고, 오직 정지와 전진. 죄책감이라는 온도가 나를 뒤에서 붙잡거나 떠민다. 다시는 책가방을 앞으로 맬 일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붙잡거나 떠밀 때엔 책가방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그 책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