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왈왈 아파트 관리사무실입니다.(12)

12화 문 좀 열어주세요(전편)

by Raindrops

"저기 집 문이 안 열려서 그러는데 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어르신 비밀번호는 잊어버리셨어요?"

"그게 계속 틀려서 그러는지 문이 안 열려"

"그럼 열쇠 하는 사람을 불러서 여셔야 해요…. 이게 OO도어록인데 주말이라 오늘은 연락이 안 될 것 같고 열쇠전문가는 아마 문을 열 수 있을 거예요. 여기 연락처 OOO-OOOO-OOOO입니다."

아직도 해가 짱짱한 8월 초 오후 5시쯤 한 어르신이 관리실에 찾아와서 비밀번호가 안 맞는다며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비밀번호를 여러 번 틀려서 문이 잠겨버린 듯하다.

한 시간쯤 지나 땀을 흘리시며 그 어르신이 다시 찾아왔다.

"문을 열 수가 없어!! 비밀번호가 계속 안 맞는다고 하는데. 문 좀 열어줄 수 없나?"

"김반장! 내가 이 어르신 모시고 세대 다녀올 테니까 민원 처리 좀 해줘"

"네 다녀오세요!!"

오주임은 어르신이 안타까웠는지 어르신을 모시고 나갔다.

"어르신 비밀번호가 계속 틀리면 도어록이 도둑으로 생각해서 안에서 잠겨서 아예 열 수가 없어요. 비밀번호는 생각이 안 나세요?"

"내가 정확히 눌렀는데 안 열리는 거야!"

"어르신 혹시 자녀분들 없으세요? 전화 한번 해보세요."

"나 혼자야! 아무도 없어"

"어르신 제가 열쇠 가게에 전화해볼게요."

"여기 왈왈 아파트인데요. 집주인 어르신이 비밀번호를 계속 틀려서 문이 잠긴 것 같아요. 와서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네 30분 안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아파트 위치가 어디죠?"

"어르신 30분 안으로 열쇠 가게 사람이 온다고 하니까 관리실에 가서 조금 기다려 보시죠"

"그냥 나는 집 앞에서 기다릴게. 바쁘면 가서 일 보시게"

"그럼 열쇠 가게 사람 오면 다시 오겠습니다."

"오주임님 ERP를 봤더니 이 어르신 80이 넘으셨어요. 근데 혼자 사시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물어봤더니 혼자라고 하시더라고 열쇠 가게 불렀으니까 오면 열어주겠지."

30분쯤 지나 열쇠 가게 주인이 오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장에 와서 봤는데요. 이거 열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OO도어록에 전화해서 AS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말이라 올지 모르겠네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도어록을 아예 분리할 수는 있는데 그럼 도어록이 망가져서 새로 구입해서 장착해야 합니다."

"어르신은 뭐라고 하시나요?"

"돈 들어가서 그러는지 알아서 하신다고 그냥 가라고 하시네요. 어르신이라 출장비도 받기도 그렇고, 방법이 없네요."

"김반장 별일 없겠지?"

"주임님 80이 넘어서 조금씩 깜박깜박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관리실에 와서 하룻밤 지내고 내일 OO도어록 부르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다시 세대에 갔다 와 볼게."

오주임은 세대에 갔지만 어르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 경비실에서 전화가 왔다.

"따르르릉"

"네 왈왈 아파트 관리사무실입니다."

"경비실인데요. 세대에서 전화가 왔는데 옆집에서 너무 시끄럽게 해서 쉴 수가 없다고 합니다."

"몇 동 몇 호죠?"

"네 124동 502호입니다."

"네? 혹시 오늘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경비실에 오신 적은 없었나요?"

"아 아까 집 비밀번호 잊어버렸다고 오신 어르신 있는데, 망치 같은 연장이 있는지 물어보고 갔습니다. 관리실에 가서 문의하라고 했습니다."

" 그 어르신 집이 124동 501호입니다."

"주임님 아까 그 어르신 집 옆에서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가볼게요."

세대에 도착한 김반장은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5층으로 올라가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데 텅! 텅! 하는 소리가 동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 밤 12시가 넘었어요! 어르신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문이 안 열려서 문을 부수고 있는 중이야!"

저녁 무렵 오셨던 비번을 잊어버려 문을 열지 못했던 그 어르신이었다. 8월 초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었고 아파트 복도의 온도는 30도가 넘었다. 어르신은 웃통을 벗어 런닝 차림이었고, 손에는 커다란 돌멩이를 들고 도어룩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미 도어록은 반쯤 망가져 있었고, 문 옆에는 가위에 긁힌 상처가 문에 있었다.

"어르신 이제 그만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계속하시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어르신은 김반장의 얘기를 들은 척도 안 하고 계속 돌멩이로 도어록을 내리쳤다.

"아 이제 못하겠어. 좀 쉬었다 해야겠어."

갑자기 힘들었는지 어르신은 돌멩이를 내려놓고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어르신 여태 집에 못 들어가셔서 이러고 계신 거예요? 지금은 그냥 관리사무실에 가서 주무시고 내일 OO도어록에 전화해서 열어달라고 하시면 어떨까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집에 들어가서 자야지…. 내 집 놔두고 어디서 가서 잔단 말인가!!"

"돌멩이로 쳐서 자물쇠를 부숴도 안 열릴 것 같아요. 혹시 여기 있다가 아프시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관리실로 가서 쉬세요."

어르신은 옷이 전부 땀에 젖어 있었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힘들어 보였다. 김반장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오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임님 어르신께서 돌로 문을 부수고 계십니다. 돌로 도어록을 치는 소리가 나서 민원이 들어온 거예요. 그만하시라고 해도 계속하신다고 하시고, 관리실에 가서 주무시자고 해도 안 가신다고 하세요. 어떻게 할까요?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신고하는 건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김반장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비실로 갔다. 경비반장님은 나이가 있으시니까 그 어르신 하고 얘기하다 보면 해결 방법이 나올 수도 있을까 해서 경비실로 찾아갔다.

"경비 반장님 오늘 집에 못 들어가신 그 어르신 좀 전에 민원전화 온 그 옆집, 돌멩이로 도어록을 치고 계셔서 소리가 난 거예요. 반장님이 가서 관리실에서 주무시고 내일 처리하자고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으세요. “

"내가 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아까도 여기 와서 문이 안 열린다고 한바탕 하고 갔는데, 그리고 지금 여기 경비실에 혼자 있는데 자리 비우기가 쉽지 않아서......"

"그래도 한번 가주시면 안 될까요? 어르신이 혹시 잘못될까 봐 그래서요"

"그냥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이 알아서 해줄 거야, 저렇게 계속 시끄럽게 하면 입주민들이 또 난리 친다고!"

김반장은 경비반장에게 어르신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불미스러운 일에 엮기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다. 김반장은 다시 501호로 갔다. 공동현관 입구부터 또 돌멩이로 도어록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지금 이러시면 안 돼요. 집에 들어가고 싶으신 마음은 알겠지만 내일 날 밝으면 그때 해결해야 해요. 벌써 새벽 1시예요"

계속에서 도어록을 치자 도어록이 부서졌다. 하지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도어록이 망가졌을 뿐이고 통째로 빼내지 않으면 문은 안 열리게 되어 있다. 어르신은 망연자실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민원 접수한 502호에 한 사람이 나왔다.

"어르신 괜찮으신 건가요?"

"아 시끄러웠죠. 지금 어르신이 도어록 부수다가 지치셔서 바닥에 앉아계세요. 관리실로 가자고 해도 안 가셔서 걱정입니다."

"어르신이 걱정돼서 나와봤는데... 어르신 여기 계시면 위험하니까 관리실로 가세요!!"

"나는 내 집에서 잘 꺼야!!"

502호는 집으로 들어가고, 김반장은 다시 오주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오주임도 특별한 방법이 없는 듯 체념한 상태였다.

"어르신 여기 이렇게 계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관리실로 가세요"

"내 집 놔두고 왜 관리실에 가서자. 문 안 열리면 나는 이 앞에서 잘 꺼야!"

김반장은 방법이 없었다. 혹시 이곳에서 주무시다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119로 전화를 걸었다

"아 저는 왈왈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인데요. 어르신 한분이 현관문을 열지 못해서 문을 부수다가 지치셔서 문 앞에 앉아 계세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 관리사무실로 가자고 하셔도 안 가시고, 오셔서 현관문을 열어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안되면 어르신이라도 보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곧 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동 몇 호죠?"

"124동 501호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20분쯤 지나 소방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이 도어록 부수는 데 동의하시는 거죠? 문에 상처가 날 수도 있습니다. 어르신 동의하시는 거죠?"

소방관 3명이 왔다. 한 분은 선임자인 듯 이것저것 물어본다.

"원래 경찰에 먼저 신고하시고 경찰입회하에 문을 열어야 하는데 관리사무실에서 신원을 아신다고 하니까 열어드리는 것이에요. 이분은 여기 혼자 사세요?"

"예 혼자 살고 계십니다"

"어르신 이름이 뭐예요?"

소방관 한 명은 어르신 신상에 대해 조사하는 동안 두 명의 소방관은 커다란 제거 장비를 가지고 능숙한 솜씨로 도어록을 제거했다. 도어록을 제거하는 일은 자주 해서 그냥 아무 일도 아닌 듯 끝냈다.

"어르신 여기 도어록은 제거했는데 여기 테이프로 붙여놓지 않으면 잠겨서 또 못 들어가시게 돼요. 그리고 내일이라도 당장 도어록업체에 전화하셔서 수리하셔야 해요!!"

김반장은 관리사무실로 돌아와 녹색 테이프를 찾았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할아버지 현관문에 붙였다. 혹시나 또 잠겨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방관들은 신고자가 누군지 물어보고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소방서로 나와서 진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소방관들이 돌아가고 나서 김반장이 어르신에게 말했다.

"어르신 이제 집에서 주무시게 되어서 좋아요? 왜 문을 부수고라도 집에 들어가려고 하셨어요? 아까 열쇠 가게에서 왔을 때 열어달라고 하시지 벌써 5시간이나 지났는데 혼자 문을 여신다고, 문 부순다고 얼마나 힘드셨어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으신 거죠?"

"요즘은 매일 깜박깜박해…. 비밀번호가 갑자기 생각이 안 나. 그래도 조금 지나면 생각이 나서 비번을 눌렀는데 안 열리는 거야.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안 되더라고. 어떻게 하겠어.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 다른 데 가서 잘 수도 없잖아, 변변치 않은 집이지만 여기가 내 집인데"

"관리사무실에서 주무시고 내일 열었으면 이 밤에 이렇게 고생 안 하셨을 텐데요"

"나이를 먹을수록 집에서 잠은 자야지. 그리고 다른 데서 잔다는 것이 쉽지 않아. 무섭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내 집이 아니면 아마…. 생각만 해도 끔찍해서, 그래서 집에서 자야 해"

"이제 집에 들어가셨으니까 편히 주무세요. 그리고 도어록 비밀번호 말고 열쇠를 여는 것으로 바꾸셔야 할 것 같아요. 또 비밀번호 잊어버리셔서 문 부실 수는 없잖아요."

"오늘 소방서에 신고해 줘서 고마워. 난 이런 일로 소방서에서 올 줄을 몰라서"

"저도 오는지 몰랐어요. 저는 어르신이 위험할까 봐 부른 것이에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 날 아침 어르신은 또 119로 신고를 했다 집을 나왔다가 문이 또 닫힌 것이다. 그런데 119에서 같은 일로 두 번 출동은 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열쇠 가게에 전화해서 문을 수리하고 들어가셨다고 한다.

내가 살아온 모든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어떨까? 지금 현재 순간의 내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끔찍하게 소름이 끼친다. 그런데 실제로 그 상황을 맞닥트린 어르신들은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살지 않고, 아프기 전에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