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입니다만 대화가 필요하신 가요?
비난의 방향
#비난의 방향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교과서에 실린 대한민국 지도를 보고 “우리나라 지도는 호랑이를 닮아 용맹하고 강인한 민족성을 보여준다”라고 하시며, 일본이 그런 우리의 민족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연약한 토끼를 닮았다”라고 폄훼한다고 하셨다.
나는 도무지 우리 지도의 어디가 호랑이의 얼굴이고 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큰 귀를 가진 토끼가 옆으로 돌아 앉아 있는 모습에 가깝게 보였다. 서울쯤에 귀여운 눈을 그리고 평안북도쯤에 까맣게 칠한 코와 쭉쭉 뻗은 수염을 그리고보니 더욱 그랬다.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는 마음에 옆에 앉은 짝에게 보여주었다.
예상밖에 충격이었다. 그걸 본 짝은 주변 친구들에게도 보여주며 나를 일본 놈이라고 놀렸다. 일본놈으로 매도 당했다는 것 보다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누구 하나 어떻게 호랑이 모양인지는 설명하지 못 했다는 점이었다. 어렸던 친구들은 오로지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있던 '토끼는 남의 편, 호랑이는 우리편'이라는 프레임이었다.
아마 그때 그 친구들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었을 것이다. 비난은 하는 사람에게서 떠나 받은 사람만이 지니고 살아간다.
얼마 전 또 개 물림 사고가 발생했고, 덕분에? 내 브런치 특정 글의 방문수가 늘었다. 인기 없는 글이라 댓글도 없었기에 첫 비방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글은 어떤 순수한 아이가 내 개에게 해주었던 인사에 감동받아 쓴 글이었고, 내 개가 무섭다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말로 해준다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분은 댓글을 달고는 아이디를 바꾸고 다음날 탈퇴해 버리셨다.(댓글을 달고 아이디를 바꾼 뒤 기존 댓글을 삭제한 기록이 알림으로 남는다) 비난을 하고 싶었으나 대화는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내 글에 어떤 부분이 혐오이며 목줄 풀린 개와 같은 지 설명해 주었다면, 나는 그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개를 키운다는 이유로 어디선가 일어난 모든 개 물림 사고에 죄책감을 느껴야만 한다는 프레임을 뒤집어쓴 채 조용히 그 글을 삭제했을까.
#정말 크기가 문제인가요?
하루가 멀다 하고 개 물림 사고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새로운 문제가 아님에도 관심도가 증가하자 기사화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처음 관심이 집중되었던 사건은 단연 최시원의 프렌치 불도그 사건이었다. 리드 줄을 하고 있지 않았던 개가 옆집 사람을 물었고 물린 분께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 충격적인 사건이 준 프레임은 [개가 사람을 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기본적으로 개가 외출 시 목줄을 해야 한다는 조항을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되었음에도 다른 법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근거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경기도는 반려견의 체고와 체중을 기준으로 입마개 강제 조항을 만들려 하였으나 많은 반발로 인해 제고하겠다고 한 수 접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기도가 제시했던 체고와 체중이라면 사고를 발생시켰던 프렌치 불도그는 입마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중형견 종이 었다는 것이다. 결국 애먼 대형견들만 더 강한 제재를 받을 뻔했다. 사고의 원인과 그 결과의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후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견종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있다. 특정 견종의 공격성에 대한 궁금증 혹은 그 크기로 피해의 정도를 가늠하고자 하는 이유리라 생각된다. 개 물림 사고가 발생한 견종이라는 프레임은 마치 법령으로 정해진 입마개 필수 견종 외에도 모든 개가 입마개를 해야만 한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개의 크기로 인한 광범위한 제재가 어려워지자 견종이라는 단위 개체로부터 시작하여 좁혀 들여 가는 형국이다.
#입마개가 싫은 것이 아니다
이런 사건들 마다 따라붙는 주장은 사람이 개보다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이 말은 현재 개들이 사람들보다 우선적으로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정말 그런가? 정말 우리가 그렇게나 개를 배려하는 국가인가? 얼마 전 큰 불이 났던 속초에 털이 그을린 채 방황하던 개들과 개가 들어갈 수 없는 보호소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과 개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할 만큼 개를 배려하고 있는 사회라는 근거 없는 주장과 사람과 개라는 적대적 이분법적 사고로 문제의 근본을 해치는 악의적인 프레임이 아닐 수 없다. 이건 개와 사람이 아니라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문제이다.
결국 지금까지 쏟아지는 개 물림 사고에 대해 언론은 [크고 사납고 위협적인 개들이 입마개를 하지 않아서 인명사고가 발생했다]와 그럼에도 반려견주들이 [우리 개가 불쌍해서 입마개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정상적인 반려견주들이라면 입마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내 개가 입마개를 불편해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시킨다. 그럼에도 입마개 문제에 반발하는 이유는 저 프레임에 씌워진 혐오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개의 크기와 견종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한 혐오적인 처사를 거부한다.
#문제는 사람
이 사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다.
목줄을 하지 않고 방심했던,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며 방치했던,
이 개는 작아서 괜찮다고 안심했던,
한눈을 팔고 안일했던 반려견주들의 문제다. 모든 개는 물 수 있다. 위협을 느끼거나 놀란다면 분명 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주의 안일함이 동반한 개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다.
이런 사람들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반려견주들이다.
목줄 풀린 개가 내 개에게 달려드는 것,
치우지 않은 개 똥으로 인해 눈치 받게 되는 것,
개에게 물린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방치하는 견주들로 인해 다른 견주들이 받아야 하는 비난이다.
사람과 사는 것은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
그것을 가르치지 못한 사람이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한다. 반려견주로, 사회인으로 본인의 책임을 다 했으면 한다. 누구나 안전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주어진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것은 반려견과 사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다. 책임을 다하지 않아 다른 반려인들의 제한적인 자유마저 잃게 한다면 그 비난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할 것이다.
부디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길,
부디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비난이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