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공부 못한 사람 시점 1-2

2010년 이방인의 눈에 비친 마닐라

by 아가리사업가

제주도를 다녀온 후 11월에 예정되어 있던 어학연수를 가야 했다. 혼자서 타지에 가는 것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잘 싸놓은 캐리어를 들고 집을 나서면서 부모님께 "무사히 잘 갔다며 오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겠다"라는 인사를 남겼다. 편치 않은 마음을 이윽고 공항버스를 타러 동대구역으로 갔다. 버스터미널은 많은 사람이 즐비해 정신없었지만 나는 시간과 타는 곳을 알아 두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몇 분이 흘렀을 때쯤 인천공항행 버스가 도착했고, 덤덤한 마음으로 공항버스에 올랐다. 두렵고, 무거운 마음도 잠시 5시간이라는 긴 여정에 나는 잠이 곤히 들었다.


인천공항에 다 달았을 때 긴 다리를 건너고 있었고, 버스에 내리자 날씨는 상당히 추워져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인천공항은 엄청나게 크고 넓었다. 도착해서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았고, 약속된 장소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을 보니 이전의 두려움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탑승 절차를 밟았다. 늦은 저녁과 5시간의 비행을 견디기 위해 공항 안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처음 공항에서 밥을 먹는데 밥값이 내 예상에 없는 밥값이었다.


예상에 없는 밥값을 생각하며 밥을 다 먹고, 간단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같이 출발을 했고 모두 나보다 다 형, 누나들이었다. 지금은 회계사, 회계사 부인, 베트남 삼성에 다니는 형 이렇게 자신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전광판에 필리핀 에어라인 마닐라행이 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도착지가 해외인 비행기는 처음이어서 많이 떨리고 설레었다. 이때는 사람들과 조금 친해진 상태라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여권과 항공권을 확인하고 비행기 좌석 가운데 일렬도 앉은 기억이 난다.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저녁 늦게 출발해 새벽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이었다. 기내방송에서 웰컴 인사와 동시에 비행시간을 안내해 주었다. 총 5시간 동안 비행을 해야 했고, 이 말은 5시간 동안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어야 했다. 이때까지는 앉아 있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몰랐다. 기내에 안내방송은 모두 영어로 나왔고, 승무원들도 다 외국인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몇 분동 안 자막 없는 영화를 보면서 갔다. 무슨 말인지 몰라 이내 잠들었다. 분주한 움직임에 잠시 깼더니 밥을 주고 있었다. 밥이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들었다. 메뉴는 닭고기와 소고기 2가지 음식이 나왔다. 나는 자신 있게 "비프"라고 말했다.


밥은 찰기 하나 없는 날리는 밥알이었으며, 고기는 역시 고기였다. 밥과 적당한 채소, 양념된 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요거트를 먹은 기억이 있다. 새벽에 허기를 달래고 바닷가 어디 위에 떠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잤다. 불을 꺼놓기 때문에 자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자면서 나는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눕기 시작했다. 그렇다. 비행 3시간 정도만에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멀쩡한 사람도 디스크 환자로 만들 기세였다.


도착하기 몇 시간 전에 기내식을 한 번 더 주었다. 불이 꺼지면 자고 불이 켜지면 먹고 다시 불이 꺼지면 자고 사육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새벽(?) 밥을 먹고 입국 심사에 필요한 약식 서류를 써야 했다. 수험생활 때 보던 외국어 영역 단어들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뜻을 몰랐다. 그래서 처음 써보는 거라 옆사람 것 보고 쓰라는 대로 썼다. 서류를 다 작성하고 다시 잤다. 기내 불이 켜져 일어나 보니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승무원에게 말 한번 걸고 싶었지만 영어에 자신이 없어 못했다. 그렇다 나는 찐따였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덥고 습한 날씨가 바로 느껴졌다. 입고 있던 파카를 벗어 팔뚝에 걸쳤다. 공항 안쪽으로 들어와 수화물부터 찾았다. 내 가방은 누가 봐도 내 거라는 표시를 형광 띠로 해놔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비행기에 내려 입국 장소를 나왔을 때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으로 외국 땅에서 현지인을 보는 순간이었다. 덩치 큰 가드들이 주변에 있었고, AK소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도 볼 수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 다 달았을 때 나는 입으로 "투 스터디 잉글리시"와 "스튜던트"를 연신 외우고 있었다. 심장은 1초에 180번 정도 뛰는 듯했다. 한라산 올라갈 때 심장박동수가 178이었다. 그때 나는 가만히 입국심사대 앞에 서서 한라산을 등반하고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 이르렀을 때 입국심사관은 나의 얼굴을 보고 씌익 웃더니 그냥 통과시켰다.


통과된 후 별거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왔던 일행들을 찾았다. 이미 학교 관계자분이 우리를 마중 나와있었다. 그분은 공항 밖에 나가면 귀중품을 조심하라고 했다. 항상 여행용 가방과 보조 가방은 눈앞에 놔두고 시계같이 빛나는 거는 주머니에 넣으라고 했다.


살짝 두려운 마음을 안고 밴을 타러 공항 밖으로 나갔다.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몰려들었고, 두 손은 손바닥을 포개어 있었다. 도로에는 긴 지프가 다니고 있었다.


내가 탈 밴은 우리나라의 스타렉스와 비슷한 차였지만, 조금 작은 크기의 도요타 차량이었다.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도요타와 미쓰비시 일본 브랜드의 차들이 많이 보였다. 새벽에 비몽사몽 한 상태로 모여 학원 관계자 분이 주시는 물과 약간의 간식을 먹으며 차로 6시간 걸리는 바기오로 향했다. 차를 타고 몇 분이 지나 전부 다 곯아떨어졌다.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휴게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다시 출발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동이 텄고, 아침을 넘어 아침밥을 먹을 쯤에 바기오 어학원에 도착했다. 학교 관계자 분의 말에 따라 각자 방을 배정받고, 짐을 놔두고 얼른 아침밥을 먹으러 이동했다.


아침 메뉴를 보면서 "아 여기가 필리핀이구나, 외국이구나"를 느꼈다. 24년 동안 아침 밥상으로 한식만 봤는데 여기는 시리얼, 빵, 쨈, 우유가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숙소 와서 씻고 바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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