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문맹아의 필리핀 어학연수
우리 팀은 다소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 이동할 때 1:1 수업과 그룹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막상 보니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내가 외국인과 단둘이 영어로 얘기하는 것이 두려웠다. 당장 외국인과 다음날부터 영어로 대화하고, 수업을 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낯설었다.
밥을 먹고 베란다의 난간에 기대 바기오의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고산지대에서 보는 전망은 숨이 탁트 일 정도였다. 맑은 날씨 덕분인지 햇살은 따스하고, 덥지 않은 날씨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광합성을 몇 분 한 후에 다시 방에 들어가서 잤다. 시차적응이 필요한 건지 몸이 계속 처지고 무겁고 잠만 왔다.
자고 있을 무렵 룸메이트가 수업을 끝내고 방에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가 넘었다. 곧 있으면 저녁을 먹을 준비를 해야 했다. 물론 준비는 식당 아주머니가 하지만 식당까지 가는 준비를 해야 했다. 저녁은 여느 한국의 가정식과 비슷했다. 첫날 먹은 것은 닭고기 요리였고, 닭볶음탕에 가까운 요리였다. 굉장히 한국인 입맛에 맛게 칼칼하고, 약간 맵게 간을 해서 굉장히 만족했다.
이렇게 밥을 먹고 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아직 친구가 없어서 방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를 했다. 내방은 3인 1실이라 심심하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선생님들의 스타일이 있어서 수업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선생님들의 특성을 얘기해주며, 인기 많은 선생님을 추천해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 중에는 게이도 있었다. 평소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지만 게이인 선생님은 처음이라 뜬금없게 들리긴 했다. 그리고 각자의 고향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대학교 선배를 룸메이트로 만났다. 별거 아닌데 같은 대학교라는 소속감 덕분인지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가 새로운 사람들은 잠깐 모여라 해서 큰 방에 모였다. 오리엔테이션은 한국인 선생님이 진행을 했다. 그분은 다음날 레벨테스트를 진행할 거고, 테스트 결과에 따라 반이 나눠진다고 했다. 또한, 어학원 내에서 지켜야 할 규율들이 몇 가지를 설명했다. 남녀 혼숙 금지, 평일 10시 이후 통행금지, 주말에 외출할 때 행선지 기록하기, 숙소 내에서 음주가무 금지 등 몇 가 있었다. 치안이 불안한 곳이어서 학생들을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숙소로 돌아와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내일 테스트를 걱정했다. 사실 우리 둘은 영어를 조금도 못했기 때문이다. 걱정을 하며 침대에 누웠는데 막상 자려니 잠이 안 온다. 부모님을 뒤로하고 온 어학연수, 외국에서 보내는 첫 날밤이어서 그런지 오묘한 마음이 들었다. 시차적응이 덜 되어 잠을 설치면서 잤다.
다음날 아침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몽롱한 상태에 밥부터 먹으러 갔다. 아침은 어김없이 시리얼이었다.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된장찌개 생각이 난다. 아침을 대충 먹고 곧 있을 레벨 테스를 준비하기 위해 얼른 씻었다. 준비를 한다고 해도 레벨이 갑자기 오르지는 않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준비를 했다. 레벨테스트를 하기 위해 새로 온 6명이 한 곳에 모였다. 한국인 선생님께서 시험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오늘 일정을 설명해 주셨다. 우리는 오전에 테스트를 받고 오후부터 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오전에 테스트가 끝나면 담당 선생님과 3가지 그룹수업을 골라야 했다.
시험은 몇 가지 토익 문제를 통해 테스트를 했다. 한치의 예상도 벗어나지 않고 거의 못 풀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말하기 시험을 했다. 선생님께서 뭐를 물어보시는데 도통 모르겠다. 그냥 내가 말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말을 했다기보다 옹알이를 한 것 같다.
말하기 시험을 하면서 말 못 하는 심정을 처음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영어를 못해서 답답함이 극에 달했다. 답답함과 동시에 나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테스트 결과가 나오고 반을 정하고 남들과 나를 비교했을 때 정확히 나의 위치가 어딘지 파악이 되었다. 이것은 영어를 배우기에 굉장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테스트가 끝나고 수업시간을 짜야했다. 여기에서 모든 수업은 대학교처럼 자신의 시간에 맞게 짤 수 있었으나 스파르타 학원이어서 일정은 쉴틈 없었다. 나는 기초적인 문법과 말하기 그룹수업과 고난도의 CNN 뉴스 기반으로 하는 수업을 들었다.
다른 수업들은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 높아서 다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CNN은 진짜 들리지도 않았다. 아나운서가 말을 하는데 "아웃사이더 랩" 수준의 말하기였다. 나는 그 수업의 외톨이였다. CNN 수업은 뉴스를 듣고 뉴스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을 해야 하는데 들리지 않으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업 내내 오케이와 의성어만 쓰고 있었다. 같이 듣는 누나 한 명이 있었는데 국어처럼 말했다. 선생님은 연신 굿잡과 그뤠잇을 남발했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 did you get it?" 이렇게 묻는데 나는 자꾸 "뭘 잡았다는 거지?"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오케이와 의성어만 쓰다가 수업을 마무리했다.
하루 수업을 듣고 나니 앞으로의 공부 일정을 짜 봤다. 나는 복습과 예습을 무조건 해야 했다. 그래야 남들 하는 만큼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