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공부 못한 사람 시점 1-8

Young Leaders' Club

by 아가리사업가

YLC


나의 대학교 생활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고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된 시점이 있다. 바로 영리더스클럽(YLC) 전국 경제연합동아리에서 21기 신입회원과 20기 경북지부장을 했을 때다.


대학교 3학년 때 공부는 하기 싫었고,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기 싫었다. 취직하기 싫었고 사업이라는 것을 해보고는 싶었으나 무엇을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냥 노는 것이 좋아서 놀면서 경험도 쌓고, 사람도 만나는 대외활동을 많이 했다.


여러 대외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재밌게 놀았다. 대외활동을 많이 하다 보면 사람들끼리 친해져 어떤 대외활동이 재밌고, 도움이 되는지 정보공유가 된다. 나는 V원정대라는 독도 자원봉사동아리에서 YLC(Young Leader's Club)이라는 동아리는 알게 되었고,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후원하며, 규모가 큰 동아리를 알게 되었다.


2012년 3월 21기 신입회원에 지원하였다. 동아리 신입회원 경쟁률 3:1, 4:1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동아리에 대한 첫인상은 규모가 있고, 오래 유지가 되고 있어서 그런지 체계가 있었다.


전국 회장단 아래에 서울(3곳), 충정, 전라, 경상 이렇게 총 6개 지부가 운영되고 있었다. 운영진들이 모여 한 학기 동안의 일정을 짜고, 세부적인 프로그램들과 진행사항들을 정리한다. 일개 동아리일 뿐이지만 서류와 면접 과정이 있었다.


21기 신입회원


3월에 21기 신입회원으로 뽑히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신입회원 활동을 했다. 여러 대학교 동아리와 조금 다른 것은 체계적인 경제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진행되는 경제토론 및 경제 관련 이슈에 대해 케이스 스터디를 했다. 매주 이렇게 3시간 ~ 4시간 정도 조별로 모여 공부를 했다.


공부가 끝나면 오후 5시 정도가 된다. 그러면 다들 뒤풀이를 하러 갈 생각에 들뜬다. 운영진은 미리 뒤풀이 장소를 섭외해 놓고, 30 ~ 40명의 인원이 밤새 술을 마신다. 매주 보니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그 자리가 재밌으니 다들 집에 가기 싫어한다.


뒤통수 맞는 느낌


이 동아리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놀고 술 마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러 갔다. 술을 먹다가 보면 진지한 얘기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대부분이 대학교 3학년 정도 이기도 했고, 취업에 대해 조금씩 준비를 할 때였다.


그래서 친구들의 학점과 스펙들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 또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스펙과 학점을 얘기해보는데 전부 4.5만 점에 4.0 이상이었다. 자격증은 금융 3종 및 CPA 1차, 은행권 인턴 중, 4년 전액 장학생 등 다양했다.


듣고 있는데


1. 와 대단하다

2. ㅅㅂ 나는 뭐했지

3. 나는 병신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현실 자각이 바로 되는 순간이었다. 이 친구들은 술을 먹고 밤을 새우고 하지만 자신의 할 일에 대해 꾸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술과 나이만 먹고 있었다.


다음 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이런 나 스스로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26살에 진로를 탐색하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삶은 사람들에 휩쓸리듯이 살아왔다. 토익을 해야 하니까 토익을 했고, 취업을 해야 하니까 취업준비를 했다. 대학을 가야 하니까 대학을 갔다. 그렇게 살아왔다.


나는 26살 때부터 나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린 답


일단은 취업을 준비했다. 나의 당면한 과제부터 돌파하기로 했다. 3학년 2학기였지만 영어점수와 학점이 좋지 않았다. 최대한 학과 수업과 영어점수를 높이는데 중점을 뒀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틈틈이 찾아가기로 했다.


일단은 동아리 내에서 리더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부장직에 출마하여 과반이 넘는 득표로 선출되었다. 이때 작은 선거판을 경험했다. 사람들에게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동아리 회원들을 만나며 뽑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투표가 이럴 때 무서운 것이 아니겠나?


정치인들이 잘났다고 하지만 선거철이 되면 유권자들에게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싶었다.


이렇게 경북지부장에 당선이 되었다. 지부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운영진들과 방학 동안 한 학기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관련 경제 이슈를 확인하고, 외부인사를 초청하여 강연도 열었다.


이때 연사님들을 초청하기 위해 이메일을 400통은 넘게 보낸 듯하다. 학생단체라 돈이 없다. 그러니 감정에 호소하여 부탁드린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게 뭐는 짓인가 싶다. 강연을 했는데 돈을 안 준다니?


일단은 메일을 며칠을 돌리니 섭외가 되었다. 진짜 아직도 그분들들에게 감사하다. 그분들 중에서는 유명한 분도 계셨는데 정말 고마웠다. 운영진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은 모든 프로그램들을 내가 진행할 수 있었다.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0명 앞에서 무대에 설 수 있었고, 내가 진행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무대 체질이라는 것을 느꼈고, 이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과 발표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졌다.


이렇게 동아리에 소속되어 나 스스로 일을 찾아서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했다. 붕어빵 장사, 손난로 및 담요 장사, 쿨토시 및 냉장고 바지 장사 이렇게 물건을 때와서 파는 것도 했다.


내가 생각한 답은 일단 하는 거였다. 막상 하려고 하니 두려움도 생기고 귀찮은 것이 제일 컸다. 사실 일을 벌이는 것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문제는 해결해야 되고, 관리해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정말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았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해결했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가 시작했기 때문에 잘되도 내 덕분이고 못되면 내 탓이었다.


나는 지금도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할 일은 내가 찾아서 한다. 하지만 아직 큰돈이 안된다.


나는 고작 인생을 8년째 살고 있다. 26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기 시작해서 8년밖에 되지 않았다. 늘 맨땅에 헤딩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들을 실천은 하며 성취감을 느낀다. 나는 믿는다. 꾸준히 내가 생각한 것을 방향성에 맞게 하면은 결과는 따라온다고 믿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