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나이가 30살이 넘어가면 내 경험에 의해 나의 기준이 생긴다. 나의 기준은 집에서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나의 경험과 해답이 때로는 부모님의 경험과 마찰이 생길 때도 있다. 이 순간이 부모님의 연륜과 자식의 패기가 부딪히는 순간이다.
어릴 때는 나의 정답은 부모님이셨고,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나의 든든한 백이었다. 내가 30살이 넘어 스스로 처리할 일이 생기고, 직장생활을 하며 밥벌이를 하니 성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서 성인인 내가 퇴근 후 인사와 함께 부모님의 얼굴을 본다. 스치듯 지나간 부모님의 얼굴에는 자글자글한 주름과 듬성듬성 있던 흰머리는 어느새 머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밥을 먹고 과일을 먹으며 티브이를 함께 보는데 내 눈에 주름져 있는 부모님의 손이 스치듯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이렇게 크는 동안 부모님은 이렇게 늙어가고 계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활동적이셨던 부모님은 집에 계시는 일이 많아지셨다. 합리적이고 논리 적이셨던 분은 이제는 아집이 생기셨다. 나를 보며 웃는 일이 더 많았던 부모님은 세월이 흘러 노쇄해진 자신을 생각하며 눈물이 많아지셨다.
대가리가 굵어진 자식은 내가 정답인양, 내가 굉장히 논리적 인양 큰소리로 말한다. 그런 모습을 측은한 마음과 이해하는 표정과 내 자식이니까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듬어 주신다. 늘 부모님은 나의 편이셨고, 앞으로도 나의 편인 부모님께 큰소리로 말하고 다시 "왜 그랬을까"하며 되뇐다.
하지만 부모님의 잔소리에 나는 다시 큰 소리로 말한다. 내가 젊다는 이유와 내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나도 다 알고 있다는 말투로 말한다. 부모님은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하지만 자식 기를 꺾지 않기 위해서 "내 말이 틀렸다"라는 말을 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싸우고 난 후에도 부모님은 자식 걱정에 여념 없다.
날씨가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가라
마스크 챙겼어?
빠진 거 없는지 보고 가라?
이렇게 부모님은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자식 걱정에 여념 없다. 자식이 취업이 안되면 취업이 안돼서 걱정하고, 결혼을 안 하면 결혼을 안 해서 걱정하고, 결혼하고 아이가 없으면 아이가 없어서 걱정하고, 계속 자식 걱정이다.
부모님의 눈에는 어릴 적 장난감 가지고 떼쓰는 철없는 아이다. 자기가 잘하겠거니 생각을 해도 돌아서서 다시 걱정을 하신다.
이런 자식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다. 내 아이의 이름만 불러도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적응은 잘할까"하며 걱정을 한다.
자립심을 길러주기 위해 혼자 할 수 있도록 놔둬야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혼자서 낑낑대며 스스로 부딪히며 방법을 찾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이내 가서 도와주고, 도와주면서 이러면 안 되는 데를 반복한다. 스스로 방법을 찾으며 생긴 상처에 내 살이 깎인 마냥 속상하고 눈물이 난다.
이런 나의 마음을 생각하며 나의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많이 아프셨겠구나
많이 힘드셨겠구나
어떻게 이 많은 무게를 "부모님"이라는 단어 하나로 짊어지셨을까?
나는 아직도 철부지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