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gatha Jan 28. 2022

왕위는 계승되었으나  

1월 28일 (1547), 헨리 8세가 서거한 날

457년 전 오늘,

1547년 1월 28일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헨리 8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동시에 그의 유일한 아들인 에드워드 6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죠.      


새 왕 에드워드는 겨우 아홉 살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인 제인 시모어였는데요.  에드워드를 낳고 2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세상을 떠났죠.  실권은 곧 외척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힘없는 소년왕이었지만, 나이에 비해 진중하고 조숙했던 에드워드는 존경했던 아버지 헨리 8세처럼 강한 왕이 되리라,  마음을 다잡고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를 가르쳤던 가정교사들에 따르면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능했고, 신학 같은 학문에서도 뛰어났다고 하는데요.


소년왕 에드워드 6세와 그의 삼촌들


에드워드 6세의 음악 선생이었던 크리스토퍼 타이(Christopher Tye)의 음악 준비했습니다. 라헬의 비탄‘(Rachell’s Weepinge), 크로노스 콰르텟(Kronos Quartet)이 연주합니다.  

https://youtu.be/IdDnVaB8XXg


에드워드 6세는 크리스토퍼 타이와 매우 각별한 관계로  이런 이야기를 종종 했다고 합니다.       



영국에는 하나의 신, 하나의 진실만이 있으며, 한 명의 음악 박사가 있다.

 바로 타이(C. Tye)이며, 음악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는 존경받아야 한다.      



에드워드 6세가 음악가 크리스토퍼 타이를 이토록 극찬했던 것은 타이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도 능력이거니와 타이가 상당히 열렬한 개혁파 신도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드워드 6세는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 헨리 8세가 세운 영국 국교회의 열혈 수호자였고,  왕실 내 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가톨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불만이 있었는데요. 친했던 이복 누나 메리와 멀어진 것도 그녀가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비밀 미사를 드리는 것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이었다고 하죠?  


그런 에드워드 6세였으니 자신과 같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음악가 크리스토퍼 타이와 좀 더 친밀한 사이로 지낸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린 나이에도 투철한 신념과 정치 감각을 갖췄던 에드워드 6세.


하지만 아버지 같은 강한 왕이 되겠다는 에드워드 6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기침이 멈추지 않더니 몸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고,  1553년 열다섯의 짧은 생을 마쳤죠. 왕위를 물려받은 지 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매거진의 이전글 지고, 또 피어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