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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2월 12일 (1760) 초연된 라모의 오페라 <떠돌이 기사들>

by agatha

262년 전 오늘,

1760년 2월 12일,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희극 오페라 <떠돌이 기사들>(Les Paladins)이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됐습니다.


18세기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대표하는 장-필립 라모는 그야말로 ‘대기만성’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음악 인생을 살았습니다. 청년 시절의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프랑스 각지를 떠돌았습니다. 유랑극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들어간 적도 있고,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오르간도 연주했죠. 라모의 방랑 기간은 1722년 경 마흔 살이 다 되어 마침내 파리에 정착하기까지, 20여 년이나 이어졌는데요.


파리에 입성해서는 음악 이론가로서 먼저 이름을 얻었습니다. 당시 파리에서 악보 출판으로 명성이 높았던 바야르 사(社)를 통해 낸 이론서 <화성 이론>(1722)이 음악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것인데요. 이를 발판으로 라모는 교육가로, 또 연주자로 활동하며 영역을 넓습니다. 하지만 작곡가로 성공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라모가 작곡가로 인정을 받은 건 1733년 그의 첫 번째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가 성공했을 때였습니다. 이때 라모의 나이 50세였으니 남들보다 많이 늦은 출발이었어죠. 하지만 이후 작곡가 라모는 매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합니다. 서정 비극 <카스토르와 폴뤼>, 오페라 발레 <우아한 인도>, 코미디 <플라테> 등 다양한 극음악 장르에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양 음악 역사에서 라모는 륄리의 뒤를 잇는 프랑스 바로크 극음악의 대표 작곡가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262년 전 오늘, 1760년 2월 12일 세상에 첫선을 보인 <떠돌이 기사들>은 작곡가 생전에 무대에 올려진 마지막 오페라입니다. 이때 라모의 나이는 일흔일곱이었지만, 이 작품은 여든을 바라보는 작곡가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매우 감각적이고 활력이 가득합니다.


<떠돌이 기사들>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 속 주인공 '아티스'는 이곳저곳을 유랑하는 떠돌이 기사인데요. 아름다운 여인 ‘아르지’를 사랑하고 있지만, 만날 수가 없습니다. 늙은 영주 앙셀름이 아르지를 가둬놓고는, 그녀와 억지로 결혼할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총 3막짜리 희극 오페라 <떠돌이 기사들> 중에서 마지막 3막, 사랑하는 아르지를 마침내 구해낸 기사 아티스가 창을 휘두르며 부르는 아리에트 ‘챙, 챙, 챙, 사랑아’(Lance, Lance) 들어보세요.


https://youtu.be/xSIqqoc06Bo

라모의 희극 오페라 <떠돌이 기사들> 중에서 3막 주인공 아티스가 창을 휘두르며 부르는 노래


떠돌이 기사가 사랑하는 여인을 늙은 권력자의 손으로부터 구해내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라모의 <떠돌이 기사>. 전체 공연 시간이 원래는 2시간 가까이 되는 작품인데요. 전해드린 곡, 매우 짧은 곡이었지만 음악에 담긴 에너지가 참 좋습니다.


작곡가가 일흔일곱 살에 무대에 올린 작품, 그것도 작곡가가 생전에 무대에 올린 마지막 오페라인 <떠돌이 기사>를 알게 되니,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은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지 않으셨나요?


조급해하지 말죠.

조금 더 길게 보고,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매일 지금의 이 순간에 충실하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처럼 하루 한 편, <고음악 365>를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분도 응원해주세요.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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