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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1607),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초연

by agatha

415년 전 오늘,

1607년 2월 24일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에서 서양 극음악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 초연됐습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가 초연된 만토바의 공작 궁전(Palazzo Ducale di Mantova)


바로, 곤차가 가문 소속의 궁정 음악가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가 그의 군주와 귀족들 앞에서 선보인 <오르페오>(Ofreo)입니다. 악보의 첫 페이지에는 ‘파볼라 인 무지카(Fabola in musica)’, 즉 ‘음악으로 듣는 이야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미 9년 전인 1598년 최초의 오페라로 볼 수 있는 페리의 <다프네>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아직은 '오페라'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 않았고, 이렇다 할 작품도 거의 없던 때였던 건데요.


몬테베르디가 쓴 <오르페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 먼저 들어보시죠.. 짧은 기악곡 ‘토카타’와 음악의 신 무지카(Musica)가 작품의 주인공인 오르페오를 소개하는 노래 ‘내 사랑하는 페르메소를 떠나 당신에게 가오’(Dal mio permesso amato)가 이어집니다.


https://youtu.be/XZ2RvVMhGTg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의 프롤로그.


들으신 무지카의 노래 중간에 ‘노래로 야수들을 길들이고, 하데스도 감복하여 그의 탄원을 외면하지 못했으니’라는 가사가 나왔는데요. 오르페오가 지닌 음악적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무지카의 노래 ‘내 사랑하는 페르메소를 떠나 당신에게 가오’의 악보

이렇게 프롤로그에서 오르페오가 소개된 후, 드디어 1막부터 5막까지 우리가 잘 아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그러고 보니 지난달 <고음악 365>의 마지막 날에 뮤지컬 <하데스 타운>을 다루면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잠깐 언급하긴 했었네요.


https://brunch.co.kr/@agathayang/55


그렇다면 노래로 흐르는 물을 멈추게 했고, 사나운 짐승과 길가의 바위까지 감동시켰고, 사람은 물론 신의 마음도 움직였다는 주인공 오르페오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죠?


3막, 오르페오는 희망의 여신의 안내를 받아 지하세계 입구에 도착을 합니다. 하지만 스틱스 강의 뱃사공 카론테(Caronte)가 오르페오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에 맞서 오르페오는 자신의 가장 큰 무기, 바로 뛰어난 음악적 능력을 발휘해 뱃사공을 설득하려고 하는데요. 이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전능한 영이여’(Possento spirto)입니다.

https://youtu.be/Hs4jPwy8AMc

몬테베르디 <오르페오> 3막 중에서 '전능한 영이여'


그녀를 찾아 나는 이 암흑의 길을 걸어왔다오,
그곳이 지옥이든, 그보다 더한 곳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에우리디체가 있는 곳이 바로 낙원이라네

뱃사공에게 스틱스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오르페오의 노래 ‘전능한 영’의 마지막 가사였는데요. 음악 어떻게 들으셨나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다소 밋밋하게도 들릴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415년 전에 초연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중에서는 가장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노래라고 해요. 작곡가가 직접 그려 넣은 장식음도 매우 화려하고요.


가사의 뜻과 그 감정의 전달에 충실하고자 했던 당대의 미학이 세심하고도 균형감 있게 구현된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참석한 귀족들이 좋아했고요, 누구보다도 몬테베르디의 고용주인 공작이 매우 흡족해하면서 재공연을 추진했을 뿐 아니라, 다른 작품도 더 써보라고 몬테베르디에게 명령했죠. 그리하여 몬테베르디는 자신의 두 번째 오페라 <아리안나>를 발표했는데요. 이 작품도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오페라는 큰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리고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오페라의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위대한 작곡가로 남게 되었죠.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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