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5일 (1682), 이탈리아 제노바 반키 광장에서 일어난 일
340년 전 오늘,
1682년 2월 25일
이탈리아 제노바의 반키 광장(Piazza Banchi)에서 한 남자가 칼에 찔렸습니다. 범인은 도망쳤고, 쓰러진 남자는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요. 길 위에서 말도 안 되는 변을 당한 이 사람은 로마, 베네치아, 토리노를 거쳐 몇 년 전 제노바로 옮겨온 음악가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Alessandro Stradella, 1643- 1682)입니다.
스트라델라는 매우 재능 있는 가수이자 작곡가였습니다. 그가 이름을 얻기 시작한 건 로마에 정착한 스웨덴의 전 여왕 크리스티나의 음악가로 일하면서부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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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전 여왕의 후원을 받으며 음악가로는 승승장구하며 성장했지만, 그는 로마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여인들과의 부적절한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재정적인 부분에도 횡령 및 비리가 많았음이 드러나자 그의 재능을 아끼던 로마의 권력자들도 모두 등을 돌렸기 때문이죠.
로마에서 추방당한 스트라델라는 베네치아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자신을 후원하는 귀족의 여인과 눈이 맞아 도피 행각을 벌이게 되고, 이로 인해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제노바에 와서도 그의 행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력 가문의 딸과 염문을 뿌리던 중 340년 전 오늘, 이렇게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죠. 그의 나이 서른여덟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드라마틱한 스트라델라의 삶은 여러 작곡가에 의해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는데요. 그중에는 세자르 프랑크의 작품도 있습니다.
알레산드로 스트라델라의 음악적 재능과 그의 작품들은 명예롭지 못한 삶과 죽음으로 인해 묻혀버린 면이 없지 않은데요. 진취적 성향이었던 스트라델라는 콘체르토 그로소, 즉 합주 협주곡의 확립에 많은 기여를 했고 요, 또 본인 스스로 재능 있는 가수이자 시인이기도 해서, 극적인 내용을 다룬 성악곡 작품에서도 매우 뛰어났습니다. 헨델도 스트라델라를 높이 평가했다고 해요. 그의 음악을 공부하고 사보하는 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었고, 자신의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1739)에 스트라델라의 작품을 인용하기도 했죠.
스트라델라의 음악 듣겠습니다. 세속 칸타타의 일종인 세레나타 <해방된 노예>(Lo schiavo liberato) 중에서 'Quanto fu vergognoso-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들어보시죠. 안무가 함께 있는 공연이라 매력적이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논의가 되는 이슈죠. 예술은 예술이고, 사생활은 사생활일까요?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 예술가의 도덕성과 윤리를 배제해도 될까요? 음악은 뛰어났지만 행실이 문제였던 한 음악가가 비극적 최후를 맞은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