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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트의 현을 타고 흐르는 400년의 시간

2월 20일 (1626), 류트 음악의 대가 존 다울랜드 땅에 묻히다

by agatha

396년 전 오늘

1626년 2월 20일,

런던 시내의 세인트 안 블랙프라이어즈(St Ann Blackfriars) 교회에서 당대 최고의 류트 연주자 존 다울랜드(John Dowland, 1563?-1626)의 장례식이 거행됐습니다.


다울랜드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활동한 영국 음악가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1563년에 출생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는데요. 사망일 역시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장례식이 396년 전 오늘, 1626년 2월 20일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죠.


다울랜드는 그의 평생을 류트(lute)라는 악기와 함께했습니다. ‘류트’는 얼핏 보면, 기타와 비슷한 고악기입니다. 사실 두 악기는 소리를 내는 방식이 같습니다. 손으로 줄을 뜯어서 소리를 내구요. 역사적으로도 그 기원이 상당 부분 일치하죠. 그래서 기타를 류트 족 악기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류트와 기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구별이 됩니다. 우선 그 생김새를 보면, 류트의 뒤판은 편편한 기타 뒤판과는 다르게, 그 모양이 둥급니다. 흔히들 서양 배를 반으로 자른 모양, 반으로 나눠놓은 계란 모양이라고 묘사하는데요.

Lute,_York_Waits.jpg 류트. 기타와 비슷한 듯 다른 형태의 고악기이다.


이렇게 류트 뒤판이 둥근 아치형이 된 이유를 학자들은 현, 그러니까 줄의 개수와 관련하여 물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류트에는 줄이 6개 이상 걸리게 되는데요. 게다가 복현, 즉 두 개의 줄이 겹쳐져서 하나의 줄이 되기 때문에, 이 많은 줄들이 갖는 장력을 합하면 악기 몸통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 장력을 이겨내겠다고 뒤판을 두껍게 만들면 소리 울림이 약해져 음량이 작아지게 되니까요. 뒤판을 가능한 얇게 하면서도 악기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려고, 이런 둥근 아치 모양의 몸통이 됐다는 것이죠. 이외에도 류트는 기타와 다른 여러 형태적 특징들이 있습니다.


존 다울랜드가 활동했던 16세기 말 17세기 초는 류트 독주곡은 물론, 류로 반주되는 류트 송- 류트 에어가 가장 크게 번성했던 시기인데요. 그러면 다울랜드의 류트 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 “Flow my tears - 흘러라 나의 눈물” 들어보시죠.


https://youtu.be/ixF7foAZsmw

존 다울랜드의 대표적 류트 송 'Flow my tears'


흘러라 나의 눈물, 그대의 샘에서 떨어지네.

나 영원히 추방되었으니,

밤의 검은 새가 슬피 노래하는 곳에서

나도 슬퍼하게 내버려 두오.

그곳에서 비참하게 살게 내버려 두오.

희미한 빛마저 떨어져, 더 이상 비추지 않네.




류트 송(lute song), 류트 에어(lute air)라는 장르는 시적인 가사의 분위기와 내용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는 노래인데요 'Flow my tears - 흘러라 나의 눈물'도 참으로 서정적입니다. 첫 번째 가사 'Flow my tears', 할 때의 멜로디는 “라- -- 솔파 - 미”로, 한 음 씩 아래로 내려오는데요. 이는 떨어지는 눈물을 소리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곡 외에도 다울랜드는 많은 류트 송을 작곡했는데, 'Flow my tears'처럼 슬픔과 눈물을 담은 우울한 감성의 노래들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당대의 최고의 류트 음악가였는데 그의 음악에 슬픔의 정서가 가득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할 뿐입니다. 다울랜드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집 <A Pigrimes solace - 순례자의 위로>(1612)의 서문에서 유럽 여러 도시에서 인정받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고국에 돌아온 후 느꼈던 외로움과 불만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울랜드는 30대 초반,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정 류트 연주자에 지원했었는데,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다른 연주자가 채용되자 그 충격으로 영국을 떠나 10년 이상 돌아오지 않았었죠. 하지만 귀국 후에도 제임스 1세의 왕실에서 자신을 몇 년 간이나 등용하지 않자 고국에서 오히려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며, 불만스러워했다고 하는데요.


마침내 영국 왕실이 다울랜드를 발탁한 것이 1612년, 이때 다울랜드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서 지쳐버린 걸까요? 왕실의 류티스트가 된 다울랜드는 이전만큼 왕성하게 작곡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왕실에 입성하던 그해에 출판한 <A Pigrimes solace - 순례자의 위로>를 끝으로 더 이상의 작품집은 내지 않았죠. 대신 영국 왕실의 류트 연주자로서 예순이 넘은 나이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1625년 제임스 1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장례식에 연주자로 참여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채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울랜드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다울랜드의 음악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머무르지 않았고, 계속해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팝가수 Sting은 2006년 존 다울랜드의 음악으로 채워진 <Songs from the Labyrinth>을 발표하고, 콘서트도 자주 했었고요. 대중가수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도 다울랜드의 “Can she excuse my wrongs - 그녀가 내 잘못을 용서할까”를 녹음한 적이 있습니다.

https://youtu.be/C7juR1wV2d0

스팅이 부르는 존 다울랜드의 'Clear or Cloudy' 스팅은 세계적인 류트 연주자 에딘 카라마조프(Edin Karamazov)의 권유로 다울랜드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다울랜드의 음악은 음악가 뿐 아니라 문학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필립 딕(Philip K. Dick), 로즈 트레멘(Rose Tremain),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바로 작품 속에서 존 다울랜드와 그의 음악을 소환시킨 문학가들인데요. 그중에 미국 소설가 필립 딕은 Jack Dowland"라는 필명을 쓸 만큼, 다울랜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 등의 원작자인 필립 딕의 소설 중에는 존 다울랜드의 노래 제목이 제목으로 사용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1974년에 출판된 SF 소설 <Flow my tears, the Policeman said>로 우리나라에선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출간됐죠. 그런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는 다울랜드의 음악, 그중에서도 “Flow my tears"의 주제 선율을 주제로 한 변주곡 <라크리메>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노부인과 아오마메는 다울랜드의 음악을 들으며 타오르듯이 피어난 정원의 철쭉꽃을 내다보면서 조용히 차를 마셨다. 언제 찾아와도 이곳은 딴 세상 같다고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공기에 묵직함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특별한 방식으로 흐른다.

“이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때때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한 신비한 감회가 몰려온답니다."

노부인은 아오마메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다.

“사백 년 전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듣는 것과 똑같은 음악을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지 않아요?"

<1Q84> 중에서



396년 전, 1626년 2월 20일 다울랜드는 묻혔지만, 그의 음악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흐르네요. 시대를 뛰어넘은 류트 선율에 마음을 열어보는 오늘입니다.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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