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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밀라노 성가 맛보기

2026년 동계 올림픽을 기대하며

by agatha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대회였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선수들과 함께 애쓰신 모든 분들, 수고 많으셨어요.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존경합니다!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열리는 다음 동계 올림픽을 기대하는 분들, 벌써부터 많으시죠? 그때쯤이면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생생한 경기 직관도 가능하지 않을까... 버킷리스트에 올려본다는 지인들이 제 주변에도 있는데요.


오늘은 밀라노와 관련된 음악, 그것도 아주 오래된 옛 음악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밀라노’라고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음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페라의 도시’로 밀라노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유명한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극장이 처음 세워진 때는 1778년, 이후 롯시니의 ‘도둑 까치’, 벨리니의 ‘노르마’, 베르디의 ‘오텔로’,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등이 많은 오페라들이 이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고, 위대한 가수들이 이 무대에서 노래를 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건물이 파괴되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전후에 재건됐고, 지금까지 유럽 최고의 오페라 극장으로, 또 밀라노의 명소로 사랑받고 있죠.

19세기 당시의 라 스칼라


그런데 밀라노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문화의 도시’, ‘음악의 도시’였습니다. 4세기 후반,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Ambrosius, c. 339–c. 397)가 그 기반을 닦았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밀라노의 집정관으로 일하던 중 두 파로 갈려져 있던 그리스도교의 중재자로 나섰다가 양쪽의 만장일치로 세례를 받은 지 7일 만에 주교품을 받았습니다. 주교가 된 후엔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요, 혼돈의 시대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힘썼습니다. 전례를 정비하고 성가를 발전시킨 것도 그의 업적인데요. 이른바 '밀라노 성가'라고도 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암브로시오 성가'라고도 하는 레퍼토리가 이때에 형성이 됐죠. 이 밀라노 성가는 베네벤토 성가, 로마 성가, 모자라베 성가 등과 함께 그리스도교 음악의 초석이 되고요, 수백 년 후에 확립될 그레고리오 성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럼 암브로시오 주교 시대의 밀라노 성가 한 곡 들어보까요? 입당송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 CIvitas Non Eget Sole'입니다.


https://youtu.be/9YT5T6yeT68

4세기에 만들어진 밀라노 성가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신비롭고 묘한 느낌이 나는 음악이죠?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알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 주교 이후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로 계속해서 그 명성을 이어가며 발전하는데요. 15세기 중반에 이르면 새로운 부흥기를 맞습니다. 경제적, 문화적 기반을 갖춘 밀라노의 부호들이 재능 있는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을 밀라노로 불러들였기 때문이죠. 그중에는 ‘스포르차’(Sforza)라는 이름의 가문이 가장 유명했습니다. ‘스포르차’ 궁정은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였고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이 ‘스포르차’ 궁정과 밀라노를 거쳐 갔습니다. 음악가로는 플랑드르 악파의 최대 작곡가라고 평가받는 ‘조스캥 데 프레’가 밀라노에서 활동했죠.

밀라노의 예술가들, 음악가들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4년 뒤 밀라노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틈틈이 더 공부해보도록 하죠.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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