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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May 15. 2024

힘을 빼지 못하는 이유

열일과 갓생 사이 빈틈 채우기에 대한 생각의 시작

건반을 누르고 있는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에는 힘이 완전히 빠져야 해요. 그래야 음이 선명하게 잘 나고, 손에 무리가 가지도 않아요. 



쇼팽 <즉흥환상곡>을 연습한 지 수개월, 악보에 적혀있는 음들을 제법 흉내 내는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할 즈음 당당히 신청한 레슨이었다. 그러고선, 실은 칭찬까지 바라며 자신 있게 레슨실의 야마하 피아노를 쳤는데... 나만큼이나 내 연주를 기대했던 선생님의 얼굴을 가득 채운 것이 환희가 아니라 실망감이라는 것에 당황하고 있을 즈음 선생님이 내게 주문한 건 딱 하나, "힘 빼기"였다. 아니, 엄지손가락으로 솔#을 친 직후에 곧장 한 옥타브 위의 솔#을 누르려면 새끼손가락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대체 손에 힘을 어떻게 뺀다는 거지? 




이제 7년차씩이나 된 직장인이지만,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하였다는 혼자만의 주홍글씨는 7년 동안 "최선"과 "열심"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마구 괴롭혔다. 나는 늦깎이 신입사원이니까 더울 최선을 다해야 해, 나이에 비해 커리어가 누추하니 남들이 100을 하면 나는 120을 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야지. 나는 늦었으니까 최선을, 부족하니까 열심히...


그렇게 7년여간의 "최선"과 "열심" 덕분에 온몸과 마음에 힘이 죄다 빠졌대도, 두 개의 가치를 지향하며 지내온 것에 전혀 후회는 없다. 열일하고 갓생 사는 것에는 죄가 없으니 말이다. 만일 죄가 있다면 그건 열일하고 갓생을 살기 위해서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풀파워로 힘을 내기만 했지, 힘을 빼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최선과 열심, 열일과 갓생을 위한 연료로 쓰일 수 있도록 이따금씩 힘을 빼기'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힘 빼기는 결단코 최선과 열심을 위한 부수적인 준비운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힘을 빼는 일이란 오히려, 우리가 매 순간 다하는 최선들과 열심들의 사이사이에 반드시, 열일과 갓생을 사는 동안 기꺼운 마음으로 채워지는 구석구석 빈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감히 말하건대 인간존재의 필수요소에 더욱 가까울 것이다. 힘 빼기란 그야말로, 없으면 죽어버릴, -결국 이렇게 뻔한 비유밖에 떠오르지 않아 아쉽지만-공기와 다를 게 없는 요소다. 


의식적으로 힘을 빼지 않고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매일을 지내다 보면 매사에 풀파워로 전력질주하며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힘을 빼지 않고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아니, 애초에 우리는 풀파워로 전력질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와 달리, 태어나 죽을 때까지 풀파워 전력질주를 해야만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 또한 존중하겠으나, 딱 하나만 묻고 싶다. 지금 바로 그 생각을, 진정 당신이 인생을 '전력질주' 하는 동안 떠올린 것이 맞는지를. 이름 없는 어느 브런치 작가의 이런 단상을 읽고 있는 당신의 지금 이 시간은 결코, 당신이 "열일"과 "갓생"을 위해 "최선"과 "열심"을 다해 전력질주하는 시간이 아닐 것일 테니 말이다. (갑자기 몇 스텝을 건너뛰어 민망하지만) 그러니까 실은, 내가 진정 하고싶었던 말이란


열일과 갓생,

------------을 살아야 하는 현대인,

----------------------------------의 최선과 열심을 요구한 사회체계로서의 자본주의와 그 바탕이 된 이성


에 복종하는 방식만으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다는, 또한 결코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여기까지 써놓고 꼬박 사흘을 멈춰있었다. 도무지 글을 끝낼 자신이 없었다. 글의 논리가 갑자기 점프하고 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열일과 갓생 사이 빈틈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사실 나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빈틈이란 것을 온전히 '나'로 채워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흘을 멈추고서 나는, 평일 동안에는 자본주의 체계의 가장 충실한 업계 하나일 금융권 컨설턴트로서 열일하다가 주말과 휴일 그 잠시동안에야, 차라리 反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어딘가로 방향을 튼 채 이런저런 텍스트를 꾸역꾸역 삼키며 뭔가 아니다 싶은 생각에 잠시 머물러보았다.


다시금 강조하자면 열일과 갓생 사이 빈틈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딴엔 (구)철학도라고, 분명 지금 이 효율성과 최선의 세계로부터 방향을 180도 틀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 느끼고는 있지만 나의 깜냥은 딱 거기까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실하면서도 막연한 느낌을 제외하곤 그 어느 것도 확실히 아는 것이 없어 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무언가란 도대체 무엇인지,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당최 가능하긴 한 것인지, 낮과 아폴론적인 것, 그러니까 투머치 이성적이기만 한 것이 잘못이었다면 밤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러니까 감성을 살리기만 하면 되는 일인지, 지금 내가 느끼는 막연한 불편함이 고작 감성적인 것을 살리기만 하면 해결될 일인지, 진정 그렇게 나의 감정에게만 천착해서 될 일인지...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무언가 초조하다. 분명 어딘가 잘못된 체제인 자본주의에 그야말로 투철히 봉사하는 일인 컨설팅을 업으로 삼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를 판단할 수 없어 확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고픈 말이 많다고 생각하여 호기롭게 시작했던 이 글을 자꾸만 끝맺지 못하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구토하기만 하는 것도 결국엔, 어떻게건 해소하고 싶었던 이 불확실함을 지금 상황으로선 결코 해소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미련 때문이겠지.




바쁜 일상 틈틈이 시간을 내 <즉흥환상곡> 연습을 조금씩 하는 중이다. 건반을 누른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에 힘 빼는 연습도 하고 있고 느낌도 조금씩 오는 것 같다만... 이렇게 손가락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해서 좀 더 깨끗한 음들로 <즉흥환상곡>을 연주하는 일, 그러니까 "온전히 나"의 열일과 갓생 사이사이를 나의 음악으로 채우는 일만으로, "내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하는 일을 모두 하며 지내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요즘, 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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