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한 아파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 많은 창문 가운데 내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진다. 내 나이 곧 오십. 마냥 쭉쭉 뻗어갈 만큼 실날같은 날들이 무한정 주어지는 줄 알았는데 어느덧 앞으로 갈 길보다 이미 걸어온 길이 더 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해졌다. 그 때부터였을까?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꽁꽁 숨겨두었던 불안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갑자기 컴컴한 방에 불이 켜진 것처럼 나의 인생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불행이 시작되었다.
열심히 일만 하면 성공도 열리고 결혼도 하게 되고 집도 자연스럽게 사게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애를 쓰고 매달렸던 사업으로 인해 도리어 빚만 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연애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결국 나는 혼자 남았다. 어쩔 수 없이 빚을 갚기 위해 살던 집을 정리하고 본가 집으로 들어갔다. 이 시절 나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 한강변으로 종종 나갔다. 유일한 위안이라고는 맞은편 아파트들을 보며 ‘저 사람들도 결국은 몇 년 후에는 저 좋은 집을 버리고 떠나야 할 텐데. 저까짓 것, 잠깐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멍한 눈으로 우리 모두의 끝을 생각하고 나면 그제야 마음속에 수줍은 위안이 살짝 고개를 비췄다. 하지만 미처 마음을 다 녹이기도 전에 설익은 위안은 영하의 꽁꽁 얼어버린 한강 속으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조금은 억울한 감정이 올라온다. 애당초 큰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 작은 집에 다정한 남편과 아이, 그리고 성격 좋은 개 한 마리를 원했을 뿐이었다. 이게 적어도 서른 살 중후반쯤이면 응당 그래야 할 내 미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 모든 게 참으로 달콤한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은 동화처럼 사랑에 빠져서 하는 거라고 믿었던 나에게 결혼은 한심한 눈으로 팔짱을 끼며 내가 애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남들은 얼마나 노력하는지 한 번 보라면서. 연애 유투브를 보고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이라도 미친 듯이 모아서 남자에게 어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집 잘 가는 직업을 얻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맞춰가지 않고 이상형을 찾았기 때문에, 원래 성격이 지랄 맞기 때문에 등등.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결혼 정년기부터 십수년간 동안 나는 사실 결혼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으며 살아 왔다. 처음에는 꽤나 아팠지만 지금은 그닥 아프지도 않고 때리는 것에 딱히 뭐라 반박할 의지도 없다. 원래 비혼주의자가 아닌 내가 결과적으로 이 나이까지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그저 공손할 수밖에. 희한한 건 내가 결혼을 못하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른다는 점이다.
그럼, 결혼을 하지 않고 애라도 낳았으면 어땠을까? 처음 가게를 시작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리가 몇 달째 중단되더니 그 후 마흔 중반에 이르자 조기 폐경을 진단받았다. 결혼 계획도 세운적 없던 내가 2세 계획을 세워두었을 리가 만무했으므로 폐경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거의 까무러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왜냐하면 사실 그 날은 폐경 진단을 받으러 간 것이 아니라 난소를 얼리려고 병원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결혼에 대한 보장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마음먹고 난소를 얼리려고 갔는데 얼릴 난소조차 없다는 의사의 처연한 눈빛에 나는 몽둥이로 사정없이 머리를 두드려 맞는 느낌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1도 없던 그 날, 나는 밤새 울었고 기어이 몸살이 났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건 성격 좋은 개 한 마리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으니 내게도 마지막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은 있어야 겠다. 곱게 늙은 아줌마와 예쁜 개 한 마리. 아줌마는 이제 집도, 애도, 남편도 없지만 그래도 이 모두가 부족하지 않게 나를 사랑해 줄 개 한 마리는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밥도 많이 먹고 똥도 잘 싸는 건강한 녀석을 맞이해야지. 모래처럼 다 쓸려나간 지금의 인생이지만 사랑해주고 사랑 받을 대상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녀석 이름은 호프(HOPE)로 당첨.
앗! 참, 그러려면 일단 엄마집에서부터 나와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