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대하여

by 아가줌마

정신적으로 충격을 입거나 상처를 받는 건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신체가 다치거나 아픈 것과 같이 뇌가 느낀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린 이 이론이 내게도 일어났다. 아마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연애가 끝나버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손바닥 가운데 부분이 지릿하면서 이상한 느낌이 올라왔다. 어릴 적 손목을 꽉 조여 전기가 통하게 하던 놀이를 할 때 오롯한 느낌의 전기 기운이 올라오던 바로 그 부분이다. 전기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길을 가다가도 지릿, 조용한 방 안에서 혼자 울음을 참고 있을 때에도 지릿, 하고 자꾸 올라왔다. 도대체 이 지릿지릿한 느낌이 뭘까 궁금해 하며 따라가 보니 놀랍게도 끝에는 심장이 연결되어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때마다 손바닥 중앙이 지릿했다. 너무 놀라 전기가 올라올 때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버렸는데 이렇게 하니 다행스럽게도 더는 전기가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절의 나는 자칫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터져나오는 시기인지라 이후로는 화장실에서나 길을 갈 때나 어디서든 주먹을 쥐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얼마나 주먹을 꽉 쥐고 잠을 잤던지 손톱에 살이 푹 패여 있곤 했다. 결국엔 손톱이 닿은 부분이 너무 아파서 손바닥 중앙에 넓적한 반창고를 붙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손바닥에서 전기가 더는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임시방편은 오래가지 않았다. 손바닥 출구를 찾지 못한 전기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다시 심장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새벽 3시쯤 아주 은밀한 시간에 심장을 한두 번 톡톡 두드렸다. 한 두 번은 그냥 무시해 버렸는데 후에는 더 자주, 더 크게 심장을 때려대더니 기어이 잠을 깨워놓고 말았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많은 밤들을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 나도 오기가 생겼다. 하루는 편안한 쿠션과 조명, 그리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전기를 맞아 자리에 앉히고는 전기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 전기는 크고 작은 속상함 몇 개를 털어 놓고 도망갔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조금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이렇게 시작된 전기의 이야기는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에 걸쳐 조금씩 흘러나왔다. 전기는 자신의 아주 어릴 적 이야기까지 전부 다 해주었다. 나는 대부분 조용히 들어주었지만 감정이 올라오면 종종 같이 분노하고 울어주었다.


요즘도 전기는 간혹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 전기는 더는 쏟아낼 이야기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저 같이 앉아 숨을 크게 몇 번 들이마시고 내뱉는 게 전부다. 그러다 보면 그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가끔 손바닥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제서야 전기가 생각난다. 그러면 나는 손바닥 속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전기의 아픔들에 잠시 머물러 본다. 또 "나는 너를 잊지 않았다고, 너의 슬픔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더는 아파하지 말라고 부드럽게 손바닥 중앙 부분을 다짐하듯 꾹꾹 눌러준다.


그래서일까, 나는 주먹을 쥔 사람들이 유독 잘 보인다. 주먹을 쥔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을 공격하려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은 그들은 주먹 속에 심장의 아픔을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의 건더기들이 마구 흘러나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중이라 아무리 주먹을 펴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 사람은 피범벅으로 흥건한 사고에서 막 살아남은 생존자인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두려워하는 눈빛이 아니라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따뜻하고 공감하는 눈빛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런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예외없이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손바닥이 간질이는 전기가 찾아온 것처럼.


상처는 절대로 그냥 아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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