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때 멈췄어야 했다. 직장을 다니며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련한 작은 집의 대출금을 착실히 갚아 나가기 시작했을 때, 대형 마트에서 사온 장식품이나 음식으로 집을 채우느라 주말을 다 보낼 때, 얼음 정수기를 살까, 아니면 탄산 제조기를 살까 고민하던 바로 그 시점 말이다. 그랬더라면 그 후 십여 년간 잠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밤은 자잘한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삶으로 바뀌었을 텐데. 그러면 어느 날, 가보지 못한 미래는 못내 아쉬워 질겅질겅 물고 씹는 술안주쯤으로 변해버렸겠지. 그 편이 더 나았을지 모른다. 끝이 닳아버려 뭉툭해서 더 씹을 것도 없는 손톱만 물어뜯는 지금보다는.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또 같은 선택을 할 거란 것을. 사업의 ‘사’자도 모르지만 그 때까지 착실히 모아온 내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걸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십대부터 소위 ‘재테크’ 모임 회원이었고 자기 계발서에 중독된 열혈 광신도 아니었는가.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부’라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시간의 부자라는 것을 알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근로 소득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온통 공부만 한 착실한 사람들 천지인 우리 집안과 내 주위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 경로에서 빨리 이탈해 직접 사업에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업을 시작해 보니 사업이라는 불은 키우기도 어려웠지만, 한 번 키워놓으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제 멋대로 날뛰었다. 제대로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나는 불이 커져도 걱정, 꺼져도 걱정인지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마음은 늘 전전긍긍했다. 또 더 높은 목표와 그에 맞는 세부 계획에 맞도록 공부를 하고 전략을 짜느라 머리도 늘 과열된 상태였다. 어디 그게 다인가, 자기 계발서 코치는 나더러 해외 진출을 하게끔 외국어와 그에 맞는 체력을 키울 운동까지 하라고 그 와중에 강요했다. 결국 이 모든 걸 하기 위해 하루를 분 단위까지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삶이 지속됐다. 위대한 기업을 이끄는 위대한 리더는 이 정도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고 밤낮없이 소리 지르는 코치의 말에 울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끝은 반드시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가는 낯선 휴양지, 이름이 새겨진 한정판 명품들, 코끝을 간지럽히는 호텔 향기가 나는 예쁜 화장실을 갖춘 넓은 집, 뭘 선택할지 몰라 고민인 자동차 그리고 마냥 호의적인 주변의 사람들까지. 자기 계발서 코치는 밤낮 찐 감자 한 덩이만 내게 주었지만 조금만 더 견디면 이제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나는 그 얘기에 취해 흘러나와 흥건해진 침샘에 의지해 간신히 감자를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매번 그런 식으로, 또 그렇게 십여 년이 흘렀고 그러는 사이 나는 나도 모르게 굶주린 늑대로 변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 희망도 품지 않고 거슬리는 모든 것을 물어 죽일듯 굶주리고 사나운 눈빛을 가졌지만 덫에 갇혀버린 늑대.
어느 날, 가족 외식으로 고깃집에 다녀오고 카페에 갔다 왔는데 엄마가 이제 자신은 본인 인생에서 더 바랄 게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나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다. 바야흐로 팔십을 바라보는 엄마의 나이에 엄마는 고작 해외여행 몇 번, 미쉐린 레스토랑도 겨우 한 두 번만 가봤고 칠십 세가 넘어서야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걸 받아들였지 않은가. 그런데 고작 이걸로 인생이 만족스럽다고? 심지어 엄마가 이보다 더 바랄 게 없다는 고깃집은 내가 혼자 살 때, 맨날 밥 먹던 식당에 불과하고 그 좋다시던 카페도 내 입장에서는 실로 평범한 카페 아닌가. 충격은 미안함을 데리고 오더니 기어이 나를 크게 한 방 먹였다.
맙소사,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목마를 것이었을까? 그러고 보면, 나는 대학도 나왔고 유학에, 배낭여행에 회사 생활, 독립, 창업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지 않은가. 심지어 자식을 위해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참아본 적도 없었으니 정작 결핍에 시달려야 하는 건 공부도, 해외 경험도, 소비도 충분히 해보지 못한 엄마 아닌가? 야, 나! 욕심이 너무 과했다. 따지고 보니 당장 죽어도 하나 아쉽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나였다. 나는 주인 없는 덫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애시당초 나를 구속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몽글몽글한 일상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백지같이 빈 시간들이 보였다. 드디어 나도 만족의 시점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