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잘 먹은 다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겨울답지 않게 따스한 햇살이 길을 비춘다. 기분이 좋아져 햇살을 더 느끼고 싶어 애써 먼 편의점으로 발길이 향한다.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전 일을 마치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 집까지 이동하는 짧은 시간 속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뒷모습을 만난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음식을 하도 빨리 욱여넣는 바람에 늘 위가 아파 배를 감싸 안던 나. 대학 때에는 살을 빼려고 굶고 폭식하면서 속이 상해 피자를 들고 울고 있던 나. 직장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과 먹는 속도를 보조하려고 중간에 숟가락을 내려놓던 나. 유학 시절,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시간이 없어 대충 음식을 먹던 나. 그리고 내 일을 시작한 후, 매끼 외식에 간식을 즐기며 겉으로는 잘 먹는 듯 보였지만 실은 스트레스로 더 여유가 없던 나.
쌀밥이 맛있다는 감각, 한 톨 한 톨 밥알을 온건히 느껴볼 여유,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사십 년이 지난 후에야 어릴 적 느끼던 밥에 대해 잃어버렸던 이 감각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오늘은 어떤 반찬이 있을까? 김장 김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익었을까? 겨울엔 따뜻한 김칫국이 제 맛 인데, 오늘 또 먹을 수 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입 속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이런 반응에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입 속에 침이 고이고 배가 할 말이 있는 듯 꼬르륵, 소리를 바깥으로 내는 것이. 그동안 내 배는 왜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내가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그동안 찍소리 한번 내지 못했단 말인가. 미안해진 나는 머쓱하게 배를 살살 문질러주며 눈치를 본다.
어릴 적에는 음식이 감동을 준 기억이 많았다. 처음 만났던 짜장면이 그랬고, 경양식집의 돈까스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갓 지은 밥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엄마 몰래 새 밥을 몇 주걱이나 퍼먹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음식이 주는 감동을 온건히 드러내는 것이 그리 점잖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입맛도 미쉐린 평점과 같은 기준에 따라 그때그때 변한다는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맛이 없어도 맛있는 척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자 맛에 대한 순수한 감각은 경멸하듯 나를 손절해 버리고 떠나버렸다.
그 후, 집나간 입맛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한창 바쁘던 시기라 음식 가격보다 음식을 만들 시간을 아끼는 게 더 절실했기에, 돈을 벌면 돈을 벌기 위해 더 돈을 썼다. 그렇게 맛집을 다니거나 배달 어플로 미식을 즐기고 각종 디저트집을 섭렵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음식 준비에 대한 시간을 줄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또 내일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으며 열심히 쳇바퀴를 굴렸다. 그런데 다람쥐는 알았을까? 자신이 굴리던 쳇바퀴가 알고보니 남의 쳇바퀴였다고. 불쌍한 다람쥐는 한평생 모르고 살았을지 모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굴리던 쳇바퀴는 어느 날 멈춰버렸다.
물론 쳇바퀴에서 내리자마자 밥에 대한 감각이 돌아온 건 아니다. 멀미 같은 현기증 때문에 처음에는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속도와 환경이 너무나 달라졌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무엇보다도 속에 뭔가가 잔뜩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음식이 도통 들어가질 않았다. 우선 그것들을 비워내야 했다. 멍하고 흔들리는 눈빛으로 목적지 없는 산책을 수도없이 하고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에 잠못들던 날들 속에서 시도 때도없이 올라오는 고름같은 눈물을 짜내며 시간을 무던히도 흘러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콤하고 달달한 귤 한 조각을 아무 생각없이 입 속에 넣고 씹는 그 때, 귤의 파편들이 입속에서 폭죽처럼 알알이 터지는 순간을 만났다. 폭죽의 향연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기다렸다 다시 눈을 뜨게 되면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드디어 내 입에도 생기가 돌아왔다는 것을. 나는 드디어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벌써 편의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마음먹고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샀다. 과자가 몸에 좋지 않다는 둥, 그런 작은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둥 하는 잔소리는 넣어두길 바란다. 오늘은 유난히 밥이 맛있고 햇살도 이렇게나 환하니 오늘은 정말이지 특별히 좋은 날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