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시간

by 아가줌마

티슈를 준비합니다. 기왕이면 넉넉하게 티슈를 준비하고 집에서 가장 아늑한 장소를 골라봅니다. 시간은 다음 날 일찍 일어날 필요도 없고 아침에 눈이 퉁퉁 부어도 상관없는 주말 아래 금요일 밤이 좋겠네요. 이 날을 위해 평소 가장 슬픈 노래를 골라 두었습니다. 울다가 펑펑 울다가 맥이 끊겨서는 영 모양이 빠지고 말아버리니까요. 그런 점에서 끊기지 않는 슬픈 노래가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는 시간은 한 두서너 시간을 생각하니까 그 정도 분량이면 좋겠어요. 많은 이들이 듣고 슬픔에 빠져 심지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명곡도 리스트에 포함시킨다면 준비는 더욱 완벽해 지겠네요.

그 다음 준비해야 하는 것은 왜 우는지, 무엇에 대한 슬픔인지를 짧게 적어둔 메모입니다. 오늘 울어야 하는 이유가 딱 한 개 일수도 있지만, 저처럼 복잡다단한 이유, 다시 말해 모든 게 슬픈 사람에게는 오늘의 애도가 무엇을 위한 애도인지를 정해주는 게 좋아요. 그렇지 않으면 주구장창 울다가 진이 빠지고 넋이 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넋이 나가면 심지어 왜 울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게 된답니다. 그럼 다시 어이가 없어 기분이 상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조금 귀찮더라도 이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게 좋을 거예요.

우는 시간은 저는 10시로 정했어요. 10시가 되면 방의 불을 끄고 주황색 조명 하나만 남겨둡니다. 울 때에도 조명은 중요합니다. 흰색 형광빛 등 아래에서 우는 건 뭐랄까, 너무 쨍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내 눈물이라고 해도 그 투명한 속사정을 훤히 다 보고 싶지는 않아요. 조금은 불투명하게, 조금은 둥그렇게 상처가 보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황색 조명은 상처를 조금은 낭만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 다음에는 주황색 조명의 그림자가 미치지 않는 방구석 모서리에 앉습니다. 자리는 꼭 구석 모서리여야만 해요. 침대에 얌전히 기대어 앉거나 방 한 가운데, 혹은 화장대 거울 앞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아요. 우는 시간은 폭풍 같은 오열이 끌어 오를만한 가장 초라하고 낮은 자리여야 해요. 잊지 마세요. 폭풍 같은 오열에 가장 알맞은 장소를 골라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방구석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면 자 이제 음악을 플레이 합니다. 티슈는 왼쪽으로 쓰러지건 오른쪽으로 쓰러지건 언제든 집을 수 있는 곳에 잘 있는지 마지막 점검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점검을 마친 후 첫 음악이 끝나기 전에는 첫 눈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아마 이렇게 우는 시간을 준비한 여러분들이라면 첫 음악의 한 소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눈물이 터져 나오겠지만요. 그래도 우리도 마라톤처럼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물이 터져 나오면 가능한 가늘고 길게 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풍 오열이나 까무러칠 정도의 울음은 경험상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남기지 못했어요. 그러니 가능하면 처음에는 한 두 방울 툭 하고 눈물이 터져 나오다가 방울방울 눈물로 이어지고 방울방울 눈물은 주르륵 눈물로 변하다가 어깨가 살짝 떨리는 흐느낌을 동반한 클라이막스로 넘어가다가 마지막으로는 입을 벌리고 엉엉 하고 우는 단계까지 갔다가 역순으로 되돌아오는 단계를 추천 드립니다. 엉엉 소리가 나는 경우는 손수건이나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으면 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참고하시되, 그 대신 어깨 떨림이나 상반신이 과하게 떨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음악 플레이 리스트에 맞추어 이런 5단계 순서로 갔다 오는 것을 한 세트라고 한다면 하룻밤에 대략 4-5세트 정도를 하는 것이 좋아요.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다음 날 지장이 있더라구요. 보통은 한 3세트 하고 나면 어느 정도 풀린 것을 느끼고, 4세트로 넘어가면 조금 힘이 들면서 약간 억지로 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5세트로 가게 되면 억지로 울음을 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이상 울음이 나오지 않게 돼요. 그럼 이제 오늘의 울음 분량이 끝나고 우는 시간이 끝났다고 보면 됩니다. 뻐근한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코와 눈물을 닦은 휴지들을 치우고 불을 켜고 곧장 욕실로 가서 세수를 하세요. 그리곤 이제 다소 차가워진 얼굴로 잠자리에 드세요. 이로써 오늘의 슬픔도 다소 진정되었습니다.

슬픔은 또 찾아오겠지만 걱정은 없어요. 우는 시간에 다시 마음껏 울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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