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내가 좀 늦게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한다. 지금이야 혼밥이니 혼자 여행하는 개념이 보편적이고 워라벨, 한 달 살기 등을 누구나 수긍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혼밥을 하고,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나고, 워라벨을 부르짖으며 퇴사를 했을 때는 주변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엄마도 늘 나를 ‘이상한 애’라고 불렀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작부터 엄마와 대화가 안 된다고 알고 있던 터라 전혀 상처 받지 않았다.
기억을 거슬러 가니 학창 시절부터 이런 생각이 시작된 것 같다. 나는 늘 엄마의 대화 방식, 자녀를 교육하는 방식에 갸우뚱했다. 차분차분하게 하나씩 설명을 해주면 될 일을 엄마는 부산 사람 특유의 방식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적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말을 듣도록 했다. 전혀 친절하지 않은 말과 대화 방식, 자녀의 말에 공감하기 위해 귀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볼 때마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그냥 속으로삼켜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그렇게 나는 상처를 입고도 그냥 먹어버리는 법을 일찌감치 터득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었다. 적어도 내 인생 전반기 까지는. 나는 주변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유독 많다고 생각했다. 친구들도 그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온갖 빌런들까지, 정말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지 늘 궁금했다. 청소년기를 지나고 이삼십대를 거치면서 아마도 내가 했던 고민의 70% 이상은 바로 이 사람들에 대한 고민과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나르시즘, 사이코패스,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 피해 망상, ADHD 등으로 세밀하게 분류하고 정했다. 십수년간 고민했던 이 관계에 구체적인 라벨을 딱딱 붙일 수 있던 것은 바로 유투브의 박사님들의 공이 컸다. 그리고 유투브 박사님들은 마지막으로 내게 이 라벨링된 관계를 ‘손절’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말대로 그나마 있던 관계들까지 싹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변의 먼지 같던 관계들을 정리하니 처음에는 너무나 조용했다. 이 조용한 평온함에 마침내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나만의 평온함 속에서 살아갔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놀고, 혼자 일하고. 혼자서 뭔가를 하는 데에는 나름 1세대이니 도가 텄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넘어졌고 수술을 했으며 연애에 망하고 가게를 접었고 우울증이 왔다. 혼자서 아파하고 혼자서 혼자의 보호자가 되고, 간병인이 되고, 혼자서 스스로를 위로해 주고 일으켜 세워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픔 위로 다른 아픔이 포개져 더 가라앉을 뿐이었다.
그 당시 나는 눈물의 물방울 속에 갇혔던 것 같다. 아무리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도 또다시 세상은 눈물에 젖은 세상만 보였다. 나는 스스로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르시즘’이라고 라벨을 붙인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세상 가장 악당’이라 생각했던 나르시즘이 ‘세상 가장 선인’이지만 병자인 나를 구했다. 그 다음 나는 ‘이기주의자’에게서 도움을 받았으며 ‘개인주의자’에게서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다. 아마 이 시점부터 나는 나의 라벨링이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느꼈다. 모든 관계들을 버려버렸던 쓰레기통에 눈이 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래서 였을까. 나는 급기야 내 모습을 보고 말았다. ‘세상 가장 선인’의 둥그런 모습이라 생각했던 내 모습은 알고 보니 세모였다. 그래, 나는 꼭지점이 무려 3개나 있는 세모였다니깐! 나는 왜 내가 그동안 동그라미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제야 내가 왜 남들에 비해 유독 긁히는 게 많았는지 단박에 이해되었다. 세모한테는 동그라미도 불편한 것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남들이 아니라 꼭지점을 3개나 가지고 태어나 여기 저기 긁히는 내가 문제였다. 세상은 세상 그대로, 남들도 생긴 그대로 그저 있을 뿐이었다. 창피함이 몰려왔다. 세모여서 창피한 게 아니라, 나도 고작 세모였으면서 네모, 동그라미들을 죽을 듯이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진심 기어들어가고 싶지만 내가 워낙 뾰족한 세모라서 동그란 구멍에도 안 들어갈 것 같아 유감이다.
하지만 앞으로 더는 구멍이 동그랗다고 뭐라 하지는 않을 결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