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펫로스, 긴 애도의 시작
여행 마지막 날.
제주 관음사에서 기와불사를 했다. 보리와 애기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원 문구를 기와 위에 손으로 써넣으면서 그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유명한 절이라는 이름값과 별개로 이곳에 꼭 다시 오게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인상 깊은 사찰이었다. 한라산을 향하는 중산간에 위치해, 목조건물들을 품어 안고 있는 산자락의 서늘하고 습한 기운과 오래된 푸른 이끼와 고사리와 끊이지 않는 산까마귀 울음소리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신비로웠다.
역사는 오래된 절이지만 제주 4.3 때 전소되었다가 다시 지어졌기에 사실상 지금의 모습은 20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거였다. 그런 시간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모든 풍경이 리셋되었지만, 그래도 인간에겐 해석을 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습성이 있기에, 리셋된 풍경 속 보이지 않는 것들도 상상하고 되새기고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불교 신자이기는 하나 ‘나일론 신도’로 살았다 보니 오랜만에 들어간 대웅전에서 절을 어디를 향해 몇 번 해야 되는지 헷갈려 다소 뚝딱거리기도 했지만, 향 냄새와 금동 불상들을 만났을 때 오랜만에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과거 어떤 스님이 수행전진을 했다던 현무암 석굴에 들어갔을 때, 바깥과 확연히 다른 서늘한 습기와 현무암 바위벽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와 사방에 찬란하게 밝혀놓은 소원 촛불들이 자아내는 상서로운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동굴 안의 불상과 촛불을 한참 바라보다 목이 메었다.
보리와 애기를 위해 이기적이고 못난 애착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던 부족하고 서툰 인간이었지만, 억겁의 시간 속에서 티끌로 있다 갈 내게 와준 내 고양이들을 향한 마음, 이거 하나 선물 받을 수 있었다는 건 비루한 내 삶에 축복이고 영광이었다.
보드랍고 따뜻했던 온기, 늘 나만 바라보던 뭉클한 눈맞춤, 나를 향해 종알거리던 목소리, 웃음. 온 생을 다해 넘치도록 나를 사랑해 준 보리와 애기.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들.
‘자애와 자비의 상징’으로 ‘33가지 몸으로 세상에 나타나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지켜주는 보살’이 ‘관세음보살’이라던데, 고양이의 몸으로 나타나 보리와 애기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있어준 관세음보살을 나는 만났던 것이다. 나는 내 반려동물들에게 보호받았고 사랑받았다.
머지않아 질병과 죽음이 나에게도 찾아올 것이고 내 모든 것은 폐기되고 잊히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내 세계를 사랑으로 꽉 채운 관세음보살과 만나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 삶에서 이 이상의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미안해하고 무상해하는 만큼 그리워하고 기억할 것이다. 내가 선사받은 행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너희를 기리며, 또한 나를 위해.
끼니때를 놓쳐 어느덧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는데, 마침 사찰 일주문 앞 ‘아미헌’이라는 카페 겸 사찰음식 식당에 식사 메뉴가 있는 걸 발견했다.
정갈하고 과하지 않은 차림새의 곤드레밥과 들깨버섯탕. 나는 공양하는 마음으로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후식 식혜까지 다 비웠다. 제주의 맛집이며 ‘핫플’ 따위에 더 이상 흥미도 호기심도 생기지 않았던 내게, 그 식사는 이번 제주 여행 최고의, 아니 내 삶을 통틀어 잊지 못할 식사였다.
그렇게 보리의 장례를 치렀다. 더할 나위 없는 5일장.
돌아오는 길 비행기 창 밖 구름 위 풍경을 보며 다시 목이 메었다.
부디 나와의 끈에서 자유로워져라, 보리야.
22년 동안 나를 아껴준 나의 아기들, 나의 고양이들아.
고맙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