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펫로스, 끝나지 않을 애도
고양이가 없는 일상은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애기를 처음 만난 2003년. 보리가 떠난 2025년. 22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요즘의 일상.
참으로 자잘하고 허다했던 온갖 허드렛일들에서 나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부터 온종일 틈만 나면 어슬렁어슬렁 부직포 밀대로 온 집안을 어정거리며 바닥을 밀어도 어디선가 또 털이 묻어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고양이 화장실 근처부터 와르륵 굴러다니는 모래 알갱이를 한쪽으로 쓸어 청소기 버튼을 눌러도 또 어디선가 대굴대굴 굴러 나오는 벤토나이트 알갱이를 치우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녘쯤 잠결에 들린 꿀럭꿀럭 토하는 소리에 당장 벌떡 일어나 치웠어야 했으나 치우지 않고 그대로 잤던 탓에, 아침 무렵엔 반쯤 말라붙기 시작한 갈색 토사물 액체를, 하필이면 구멍 숭숭 뚫린 바닥매트 틈새 사이사이 닦아내기도 힘든 위치에 묻어 물티슈로 벅벅 닦아내다가, 묻은 범위가 넓어 하는 수 없이 내친김에 온 방바닥을 다 청소하다 헥헥거리며 하루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돌돌이 테이프가 내 몸의 일부인 양 거의 무의식적으로 틈만 나면 붙들고 옷에도 바닥에도 양말에도 여러 개의 방석에도 장난감쿠션에도 매트에도 돌돌돌돌 돌리고 돌리고 무한으로 돌리고, 털이 잔뜩 묻은 테이프를 또 여러 장 떼어내고 또 떼어내야 하는 귀찮은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간밤에 밥그릇에 물어다 놓은 끈과 고무줄을 치우지 않아도 되고, 내 것이 아닌 그릇들을 설거지하지 않아도 되며, 오늘은 어떤 밥과 어떤 간식을 주면 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얼른 다시 채워놓아야 할 줄어든 츄르며 이런저런 간식 목록을 헤아리다 고양이 쇼핑몰에 들어갔다가 몇 시간이 훌쩍 가버리는 일 따위 이제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고양이들은 잘 먹는다던데 내 고양이는 먹지도 않고 남긴 음식들을 음식물쓰레기로 처리하면서 '이걸 안 먹으면 다른 걸 어떤 걸 또 먹여봐야 하나?', 끝나지 않는 메뉴 선택 고민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상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바쁜 날이든 안 나쁜 날이든 매일 단 하루도 빠짐없이 고양이 화장실에서 감자와 맛동산을 캐다가 화장실 리터박스 안쪽 벽에 찐덕찐덕 들러붙은 오줌 묻은 모래를 삽으로 떼어내고 물티슈와 마른 티슈로 벅벅 닦아내다 버럭 짜증이 나, 이보다 떡지지 않고 완벽하게 굳는 더 좋은 모래를 또 어디서 찾아봐야 하나 구시렁거리지 않아도 되고, 어느 날에 크고 실한 맛동산 모양의 똥이 아닌 흐물흐물 납작한 모양으로 남겨진 무른 변에 가슴이 철렁, 얘가 어디가 또 아픈가, 장이 또 안 좋은가, 똥의 모양과 색깔과 굳기를 자세히 살펴보고 냄새를 킁킁 맡아본 후 종일 걱정돼 노심초사 마음 쓰는 날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 모래 전체갈이를 하는 날 낡은 모래 퍼내고 새 모래 퍼담고 쓰레기 처리를 하고 리터박스를 물로 씻고 말리는 참으로 귀찮고 귀찮고 너무 귀찮기만 했던 노동을 할 일도 더 이상은 없어졌다.
해야 할 바쁜 무언가 때문에 노트북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며 정신없을 때, 문득 내 오른쪽 어깨를 앞발로 톡 건드리는 기척에 돌아봤을 때 바로 옆에서 말갛고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던 보리 표정, '엄마 뭐 해? 심심해', 그 귀여운 참견에 미안함이 와락 밀려와 폭풍 포옹과 뽀뽀를 퍼붓느라 하던 일을 멈춰야 하는 일상도 이제는 더 이상 없다.
외출했을 때 수시로 휴대폰 속 펫캠을 들여다보며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귀가할 때도 펫캠을 열어보며 애가 멀쩡히 잘 자고 있는데도 괜히 나 혼자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을 동동동 재촉하는, 늘 쫓기는 것 같고 늘 미안하고 늘 보고 싶어서 얼른 최대한 빨리 집에 가야 할 것 같은 마음도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된다.
대중교통을 타고 귀가하는 길에 갑자기 내가 타고 있는 이 이동수단에 큰 사고가 일어나는 상상이 침습해, '내가 집에 못 가면 집에 있는 내 고양이는 어떡하지?', 상상의 나래가 이리저리 펼쳐지다, 어쨌든 나는 절대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도 길에서 죽어서도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그 모든 미안함과 재촉에서 자유로워졌다. 22년 만에.
너무 자유로워진 나머지 집이란 이제 굳이 빨리 돌아와야 하는 곳도 아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가 굳이 회귀하여 발 붙여야 할 곳도 아예 사라진 것 같고, 이 세상이라는 땅바닥에서 훌쩍 발을 떼 공중에 둥둥 뜰 수마저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어디든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와도 되고 맘만 먹으면 어디 멀리 며칠 떠날 수도 있게 된, 행여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아무 상관없을, 말 그대로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는 자유의 몸이 나는 되었다.
2025년 8월 15일 광복절. 22년 만에 나는 말 그대로 해방되었다. 해야 할 일들로부터, 돌아와야 할 이유로부터.
내 고양이가 존재하지 않는 참으로 편하고 자유롭고 그 어떤 속박도 없는,
쓸쓸하고 그리움 가득한, 여기가 지옥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