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펫로스 이후
모래 화장실의 똥오줌을 치우지 않고, 바닥과 옷의 털 청소를 하지 않고, 귀가할 땐 잰걸음으로 달려와 고양이부터 살펴보는 걸 하지 않는 일상이 조용히 내 몸에 스며든다. 스며들면 익숙해진다.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어찌어찌 또 적응해 낸다.
보리가 떠나고, 이런저런 반가운 소식들과 안 반가운 소식들이 스쳐 지나가고, 건강 이슈로 입원과 수술과 회복의 날들을 혼자 보내고, 이제 보리가 없는 첫 해를 맞게 된다.
보리의 사진을 고르고 인화해 예쁜 앨범을 만들려 했는데 아직 휴대폰 속 저장된 수천 장의 사진들을 제대로 쳐다보진 못한다. 장례 치른 직후 연도별, 시기별로 폴더를 정리하고 백업을 해뒀으나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못 본다. 아직은.
보면 감정이 북받칠 것이고, 울면 지칠 것이고, 지치는 건 두렵고, 두려운 건 피하고 싶으니까.
슬픔을 수용하고 슬픔 속에 풍덩 빠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회피하는 일이 때로 당장은 달아서, 부질없는 단맛에 매달린다. 쓴 맛을 못 느끼게 만들어주니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너의 앨범을 만들게. 그런데 오늘은 말고.
그렇게 몇 달이 흐른다.
문득문득 그리움이 치받쳐 올라와도, 따스한 체온과 말랑한 촉감의 몸뚱이와 발바닥 젤리, 심장을 간질이는 목소리와 말간 그 눈빛이 너무 그리워 사무쳐도, 애써 딴짓을 한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열고, 그리움을 잊게 할 만한 다른 일들에 내내 정신을 쏟는다. 내 눈물이 범람하길 원치 않아서. 그 후의 폐허가 무서워서.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잘 안 운다. 애기와 이별했을 때는 눈물로 홍수였는데, 보리와 이별한 후로는 사막이다.
22년간 내 삶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한 마리, 두 마리, 다시 한 마리. 그리고 이제 둘 모두 떠났다.
동거하는 인간 가족이 있었다면 지금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정서적인 연결과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매우 높은 사람이므로, 만약 좋은 가족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많은 위안과 지지가 됐을 것이고, 좋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옆에 있느니만 못할 정도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경험하는 건 외로움일까.
깊이 정 붙인 내 유일한 가족이었던 동물들이 모두 떠나고 빈 집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후 겪고 있는 건 외로움보다는 기이한 비현실감이다.
22년의 그 모든 시간이 한바탕 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잠에서 깬 것 같다. 너무나 다정하고 따스한, 너무나 돌아가고 싶지만 절대 못 돌아갈 긴 꿈을 꿨던 것 같다. 남은 삶 동안 그 꿈을 복기하고 또 복기하면서 살다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면 원래 이 삶 전체가 한바탕 짧은 꿈이었음을 알게 되겠지. 그러고 모든 것이 끝나겠지.
인간의 삶에서 누군가와의 이별의 사건은 대개 삶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반적인’ 삶의 발달단계를 거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결혼과 출산, 자녀의 발달단계, 인간 가족과의 만남이나 이별, 자신과 배우자의 사회경제적 신분 변화와 그에 따른 거주지 이동 등이 중요한 변곡점이 되겠지만, 내 경우엔 그 기준이 고양이다.
고양이를 만나기 전.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한 시절. 두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한 시절. 다시 한 마리와 함께 한 시절. 모두가 떠난 이후.
이 지점들로 ‘비포 애프터’가 재배열된다.
고양이를 만나기 전의 천둥벌거숭이 같던 시절, 한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한 불안정하고 불건강한 봄 같던 시절,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했던 복닥복닥 아직 젊었던 여름 같은 시절, 다시 한 마리의 고양이와 지내며 새로운 도전과 몰입을 할 수 있었던, 가을 오후의 마지막 햇살 같던 시절. 그리고 이제 내게 주어진 ‘애프터’, 내 두 고양이가 모두 사라진 이후의 시간.
새 시절의 시작점에 섰다. 뭔가를 또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 같은데, 또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해치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그 모든 걸 혼자 한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모른다. 고양이 없이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몰라도 기댈 데가 예전엔 있었는데, 내 유일한 안전기지였던 털뿜뿜이들이 사라진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볼게, 내 아기들아.
새해엔 예쁜 앨범도 웃으며 만들어볼 테니, 그곳에서 함께 하자, 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