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말

by KAKTUS

몇 달째 큰 파고는 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씩은 꼭 요동치고 머릿속에 생각을 가둔다


그러나 그 파도는 잠시일 뿐, 오래가지 못한다


한 번씩은 그때의 파도가 그립다

가슴엔 늘 열이 많았고 시시각각 파도가 부딪쳤다

용서할 수 없는 것 중에

제일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사랑이라 여겼던 믿음들은 모조리 쓸려갔다


집채만 한 파도가 치던 날들

가끔씩 나는 거울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자신에게 소름을 끼친 것일 수도 있다


길고 긴 어리석음의 터널은 언제쯤 끝이 날까

깊은 파고를 잠재우며 잠에 들곤 했다

나쁜 꿈마저 물리칠 수는 없었다


악몽은 계속되었다


사랑에 속던 내가 사랑을 속일 수 있게 되었던 것

뚜렷한 사람도 없이 서른 해가 넘어갔다


사랑을 속이게 된 이후부터 나는 늘 사랑이 고팠고

어느덧 감정의 지대와 사랑의 지형은 변해 있었다

부서진 지형에 파도는 떠밀려 오지 않았다


잔잔한 물살은 번번 사랑을 넘어가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참지 못해 본 적이 언제인지

가끔씩, 당신을 사랑해서 진정되지 않는다는 말이 그립다

마음 속에 사랑을 가두고 그저 흔들리던 그때의 말

매일 밤 귓가에 철썩이던 파도의 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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