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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KTUS Apr 05. 2017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잠시 머물렀던 도시를 떠나며


아무것도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 아무, 아무 것도.

 

위병을 앓아 한 잔의 커피도 두려워진 상태에서,

커피콩을 아주 잘 볶고 커피를 아주 잘 내린다는 카페에 왔다.


어쩐지 그 곳으로 당도하기까지의 나의 행동은 그간의 습관에 비추면 조금 수상했다.


첫번째는 만원인 전차에 타서 하차역까지 한 켠에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

평소의 내겐 북적이는 차를 놓치는 일이 편안하고 익숙하다.


둘째로 나는 생활을 늘어뜨려 놓은 잡화점에 들어섰다는 것.

생활이라는 것은 밝은 조명 아래 다각도로 구성되어 비치고 있었다.

그때의 내겐 차를 마시는 시간이 늘어갔으므로, 나는 품이 깊은 물잔 앞에 섰다.

이미 차에 관한 책 한 권이 품 안에 들려있은 후였다.


나는 몇 개의 투명한 유리잔을 들어 보았다. 차의 색은 그것들에 어울릴 것 같았다.

높이가 좀 얕고 용량이 적은 것들은 고려대상이 되질 않았다.

나는 싸구려보다는 좀 비싼, 품이 넉넉한 물잔을 집어들었다. 가볍게 들리는 유리 물잔이었다.


물잔 뒤에는 린넨을 하나 샀다.

그릇과 요리 도구을 씻고나면 즉각 마른 린넨으로 물기를 닦아 놓는 문화 속에 

얼마간 지냈으면서도 나는 나만의 린넨을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메나 걸려 있는 아무런 린넨을 가지고 생활해왔을 뿐이다.

대개의 경우, 나의 설거지는 번번히 물기 흐르는 그릇을 엎어두는 것으로 마쳐지곤 했다.


그릇의 물기를 닦아, 다시 그것들이 있던 제자리에 돌려 놓는 일은 

쉽게 생략되거나 아주 가끔씩 이루어지곤 했다.

나는 왜 오늘에서야 린넨을 사고야 마는 것일까. 나는 그 정확한 이유가 생각에 짚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릇에 묻은 물기와 슥슥 닦아내는 행위와 물기 닦인 그릇의 육체와

다시 자리를 찾는 일이 머릿속에 맴돌았을 뿐이다.

처음 들어선 생활 잡화점에서 맛본 새로운 지출이자 소비였다.


그리고 커피를 잘 한다는 집에 와서 나는 종업원에게 불쑥

혹시 차도 하세요? 라고 정중히 묻는다.

녹차와 홍차를 한다고 했다. 나는 녹차를 주문한다.

 

나는 낯설게 그리고 끝내 정중하기로 한다.


테이블 엔작은 생화의 화분이 놓여있다.

꽃에서 바람이 나는가, 꽃향기가 코끝에 머물다 흩어진다. 

매일 이 곳의 직원들이 꽂아두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나는한 잔의 녹차를 흘금 마시며 물그림자를 내려다 본다.

물이 옆으로 내다보이는 이층 짜리의 카페다.

카페 옆으로는 물이 흐르기도 하고 그 위로 나무배가 한 척 흐르기도 한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의 어떤 하루가.


나의 긴 여행은, 내가 사랑했던 도시와의 천천한 이별을 이루고 것일까.


문득 나는 부모님이 그리워졌다. 조금 다른 내 하루가 만족스러웠으므로.

그때 나의 하루로 물끄럼 접어든 생각 하나,


나의 엄마는 소설이고, 나의 아빠는 시가 아닐까하는 생각.


조금 수상스러웠던 나의 행동들도, 곧 짐작되는 도시와의 이별도, 

알 수 없는 이유들도, 물끄러미 수면에 떠온 그리움도,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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