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록] 언더그라운드: 콘크리트 침묵의 시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시도

​하늘은 이제 금지된 영역이다.
​지표면은 맹독을 품은 슬라임 조각들이 지배하는 살육의 광장으로 변질되었다. 태양 빛을 반사하며 번뜩이는 포크레인의 날들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재편했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중력의 방향을 따라,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침잠하는 것.


​1. 폐쇄된 입구
​아파트 지하주차장, 거대한 지하철 터널,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비상 대피구들이 인류의 새로운 요새가 되었다. 사람들은 최후의 1인이 들어오자마자 철문을 내리고 용접기로 입구를 봉인했다. 콘크리트 벽 너머로 슬라임의 날카로운 칼날이 벽을 긁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들려올 때마다, 지하의 공기는 숨 막히는 정적에 잠겼다.


​2. 지하의 생태계
​이제 지상의 시간은 의미를 잃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곰팡이 핀 배급품으로 연명하며, 위층에서 들려오는 '그것들'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인다.
​주차장 구역: 차량의 헤드라이트는 유일한 조명이 되었고, 차 안은 개별적인 가족들의 비좁은 침실이 되었다.
​지하철 선로: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은 거대한 대피로이자,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선로를 따라 텐트가 줄지어 늘어섰다.


​3. 단절된 공포
​이곳의 가장 큰 적은 굶주림도, 어둠도 아니다. 바로 **'입구가 뚫릴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가능성이다. 환풍구 틈새로 슬라임의 점성 액체 한 방울이라도 흘러드는 날에는, 그 지하 요새 전체가 몰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한다. 누군가 밖으로 나가려 하거나, 문틈에 귀를 대고 슬라임의 유혹적인 진동에 홀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인류는 이제 거대한 콘크리트 관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지상의 주인이 바뀐 세상을 견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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