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기] 영웅의 무덤: 닫힌 문의 저주

절망과 신화

​절망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신화에 매달린다.

​어두운 지하 동굴, 배터리가 소진되어 가는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속삭였다. 누군가 이 지옥을 끝내줄 것이라고. 슬라임의 강철 가시를 꺾고 다시 우리에게 푸른 하늘을 돌려줄 '영웅'이 나타날 것이라고.


​1. 용기라는 이름의 오만

​그들은 스스로를 구원자로 칭하며 일어섰다. 전직 특수부대원,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청년, 혹은 잃을 것이 없어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까지. 수백 명의 자칭 영웅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아껴둔 마지막 통조림을 그들에게 쥐여주었고, 녹슨 방패와 급조된 화염병을 들려주며 박수를 보냈다.


​"반드시 승전보를 들고 돌아오겠노라고."


​그들은 용맹하게 지상으로 연결된 해치를 열었다. 눈부신 지상의 빛이 지하의 어둠을 잠시 갈랐고, 영웅들은 그 빛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그것이 인류가 본 마지막 '영웅'들의 모습이었다.


​2. 비명이 지운 소식

​해치가 닫히고 나면, 남겨진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차가운 철문에 귀를 대고 위층의 소리를 듣는 것.


​처음엔 총성이 들렸고, 다음엔 강철이 콘크리트를 찢는 비명이 들렸으며, 마지막에는... 오직 정적만이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달이 바뀌어도 돌아오는 이는 없었다. 해치를 두드리는 것은 영웅의 귀환 신호가 아니라, 먹잇감을 찾는 슬라임의 기괴한 금속 마찰음뿐이었다.


​3. 영웅의 박제

​지상은 이제 거대한 믹서기였다. 수백 명의 영웅은 구원자가 아니라, 변이 된 슬라임에게 공급되는 신선한 '단백질'이자 '새로운 부품'에 불과했다. 슬라임은 영웅들이 들고나간 총기류와 방패마저 자신의 몸체로 흡수해 더욱 기괴한 병기로 진화했다.


​이제 지하 사람들은 더 이상 영웅을 기다리지 않는다. 해치는 이제 구원의 통로가 아니라,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될 저주받은 판도라의 상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영웅의 이름을 지웠고, 대신 그들이 나간 자리에 더 두꺼운 철판을 덧대어 용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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