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임의 정복
도시의 광장은 이제 거대한 도살장이자 실험실이 되었다.
심해어 괴물은 판다들과의 혈투로 인해 비늘 곳곳이 뜯겨나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위협은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부부를 유린하며 '살육의 맛'을 깨달은 슬라임은 이제 더 이상 무정형의 액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개의 포클레인 날과 전갈의 침이 뒤엉킨, 기계적이고도 유기적인 **‘강철의 가시덤불’**로 진화해 있었다.
1. 포식자의 조우
슬라임은 지면을 긁으며 심해어에게 다가갔다. 콘크리트 바닥이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다. 심해어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아가리 깊숙한 곳에서 심해의 냉기를 머금은 초음파를 내뿜었지만, 변이 된 슬라임에겐 통하지 않았다.
슬라임의 가시들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마치 전갈의 군단이 일제히 꼬리를 세우는 듯한 장관이었다.
2. 금속의 폭풍
결전은 짧고 잔혹했다. 심해어가 거대한 몸집을 이용해 슬라임을 덮치려던 찰나, 슬라임은 수만 개의 파편으로 분열하며 괴물의 몸 안팎을 파고들었다. 포클레인처럼 날카로운 날들이 심해어의 단단한 가죽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심해어의 푸른 피가 광장을 적셨다. 괴물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주변 건물을 들이받았지만, 슬라임의 맹독 침은 이미 심해어의 중추신경계에 도달해 있었다.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즉사를 불러오는 전갈의 독이 거대한 심장을 멈춰 세우기 시작했다.
3. 자아의 소멸과 확산
심해어라는 거대한 숙주를 쓰러뜨린 슬라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쓰러진 괴물의 시신을 흡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심해어의 거대함과 슬라임의 치명적인 날카로움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광장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오직 끊임없이 자가 증식하며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날을 세우는 **'살아있는 칼날의 숲'**만이 남았을 뿐이다.
슬라임의 파편 하나가 도망가던 사람의 발목을 낚아챘다. 목표를 잃어버린 폭력은 이제 도시의 혈관을 타고 번져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