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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May 25. 2018

쉬엄쉬엄 여행합시다 -폴란드

다른 나라 이야기

선입견

막연히 여행을 가고 싶다 할 때, 폴란드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폴란드에 대해 문외한인 점도 한몫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유럽 여행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간다면 좀 더 유명한 곳, 좀 더 로맨틱한 곳을 택하지 폴란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폴란드는 로맨틱하지 않다. 과거 사회주의였던 데다, 사회주의라는 이미지가 검소하고 차갑고 무뚝뚝한 분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풀어줄 여행지로 폴란드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폴란드의 첫인상은 사실상 배신이었다. 지나치게 화창한 날씨가 그랬다. 왜 폴란드 우울 Gloomy Poland 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곳의 날씨는 싸늘하고 음침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투명할 정도로 새파란 하늘은 뭐이며, 곧장 잡힐 듯 희망차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뭐란 말이지. 폴란드의 낡은 인상이 당장에 깨졌다.


여행의 이유

두 해 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로 향하는 직항이 생겼다. 그 덕에 예전보다 폴란드 관광객이 늘었다. 폴란드 여행객들은 주로 바르샤바와 크라쿠프를 방문하는데, 여기에서 조금 더 간다면 브로츠와프와 그단스크까지 찍는다(여기에서는 바르샤바만 두고 이야기할 것이다). 여느 유럽 여행지와 다름없이 폴란드에서도 교회를 보고 미술관에 가고 광장에 가고 구시가에 간다. 그런데 여행자들이 덜 신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이유도 있을 테고, 또 하나는 승리의 역사가 아닌 투쟁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폴란드는 유대인 학살의 진원지이며, 우리와 비슷한 투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둘러보게 되는 여행지들은 인류의 화려함보다는 인류의 잔혹함과 이중성을 드러낸다. 여행 와서까지 심란함을 느껴야 하나 싶겠지만, 이런 여행지도 또 없다. 여행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어떤 성장의 과정도 포함할 수 있다면 폴란드는 반드시 그런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본다.


이런 식사, 프랑스에서는 못 합니다

일련의 성장 여행을 끝냈다면 맛있는 식사로 몸을 다독일 때다. 폴란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미식의 나라는 아니지만, 예산 걱정없이 포식할 수 있는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예산으로 서유럽에서 메인 디쉬 하나를 주문할 수 있다면,  폴란드에서는 전채 요리와 메인 디쉬, 그리고 와인 한 잔을 주문할 수 있다. 수치화하자면, 프랑스에서 두 사람이 식당에 가서 약 60유로 (약 7만원)로 한 끼를 해치울 수 있다면, 폴란드에서는 약 130즈워티 (약 3만 5천원)로 풀 코스를 먹을 수 있다.

미식에 있어 폴란드가 또 사랑스러운 이유는 스프다. 폴란드도 우리나라처럼 스프를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스프, 그러니까 국에 대한 예의가 있다. 보통 유럽에서 스프를 먹으면 온갖 재료를 넣고 푹 끓인 농축액인 경우가 많아 텁텁하다. 게다가 미지근하다. 국을 사랑하는 우리 국민이 이런 유럽의 스프에 만족할 리 없다.

그런데 폴란드의 스프는 맑고 뜨겁다. 허브 때문에 낯설 때도 있지만 대부분 수용 가능한 범위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치킨 스프는 소고기 뭇국 같은 맛이 나고, 토마토 스프나 굴라쉬는 칼칼하니 익숙하다. 이런 대표 스프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스프는 국물이 그리운 한국인의 정서를 촉촉히 적셔준다.


사고 싶은 거 다 사

브랜드 쇼핑만큼이나 재미 있는 것이 드럭스토어 쇼핑이다. 유럽에 가면 약국이나 드럭스토어에서 사야 하는 필수 목록들이 있는데 폴란드에도 마찬가지다. 폴란드의 대표 드럭스토어는 로스만 Rossman 이다. 자체 PB 상품도 내놓고 천연 화장품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주한 대사 부인이 썼다고 하여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지아야 ziaja 도 여기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아야는 지성과 복합성 피부에 추천하고, 건성이라면 바이오렌다 Biolenda나 크루이드바트 Kruidvat 를 추천한다.

눈을 돌려 쇼핑을 제대로 해보자 할 때는 티케이맥스 T.K.MAXX 다. 이곳은 말하자면 시내 아울렛 같은 곳으로, 옷부터 신발, 가방까지 논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다. 다만 사이즈 품절이 잦아 어떤 브랜드를 찾으려 하기 보다는 천천히 둘러보다 득템한다는 마음으로 쇼핑하는 것이 좋다.

신발만 사고 싶다면, CCC 매장을 검색해보자. 패스트 패션처럼 한 철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저가에 다양하게 골라볼 수 있는데, 한화로 5만원 미만으로 구입할 수 있다. 이외 망고나 자라, H&M 같은 브랜드들도 대형 매장으로 있어 구경할 맛이 난다.


온전한 낯섦이 주는 전환

많이들 바르샤바는 볼거리 없는 삭막한 여행지로 안다. 아무도 쇼팽의 우아함을 품은 노비 스비아트 Nowy Swiat 거리의 노을 진 파스텔 색감을 떠올리지 못 하며, 문화과학궁전을 중심으로 높게 치솟은 스카이라인을 떠올리지 못 하고, 구시가의 진지하고 다채로운 향기를 알지 못 한다. 올해도 익숙한 여행지를 눈으로 ‘확인’하러 떠날 것인가. 한 번쯤은 설정해둔 네비게이션을 끄고 낯선 이국미에 젖어보는 건 어떨까. 그런 과감함이 그립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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