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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Nov 02. 2019

의미 찾기

사색

나이가 들수록 삶의 무게가 덜어진다. 집착이 덜어지고 의미가 덜어진다. 미래가 아주 가까이 이르고 시야가 짧아진다. 오늘이 실감날 때쯤 공허함이 찾아온다. 사는 건 사는 일밖에 아니라는 걸 문득 인정하고 만다.


인생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말을, 나는 오래전부터 의심해왔다. 사랑과 같이 행복의 의미를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기에 추구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미래를 추구하며 살았다. 성장하기 위해 분투했고,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에 열을 올렸다. 성장은 의외의 방향성을 갖고 있는데, 성장하려 할수록 삶이 와해되었다. 낱낱의 조각들이 하나로 차츰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였던 것이 낱낱이 깨어져나갔다. 삶을 알아갈수록 삶이 모호해져갔다. 성장할수록 나라는 인간이 무의미해져갔다.


더 많이 질문했다. 더 깊이 읽었다. 더 자주 생각했다. 더 쉽게 허무감에 빠졌다.


살아 있던 사람이 사라지고 세상이 끄떡없는 것을 보면, 나의 무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사라져도 끄떡없을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


나에게는 목적이 주어졌다고 생각해왔다. 나의 쓰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쓰임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마음이 끌리는 일에 달라붙어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다. 양심을 따랐다. 나를 위한 것을 넘어 우리를 위한 것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부족함없이 부족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나보다 훨씬 내 목적을 잘 해낼 사람들이 많았다.


인류사는 질적 승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우리도 개미와 같이 쥐와 같이 종족 번식으로 역사를 이어간다. 나를 대체할 사람은 많고, 그중에서 하나만 성공하면 세상은 그것으로 된 것이다. 나머지는 그냥 ‘사니까 사는 것’이다. 이토록 무의미한 인생사가 가엾게 느껴지는가.


그런데 허무주의는 조금 요상한 제안을 한다. 시야를 바깥이 아닌 내 안으로 돌리는 힘을 부린다. 세상이 나에 대해 원대한 꿈을 꾸지 않았다면, -나는 조금은 삐졌지만-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갖는다. 조금 더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다. 내 삶에 나의 색을 입혀볼 생각을 할 수 있다. 로또가 되어 언제든 직장에서 나갈 수 있는 배짱을 부리는 것처럼, 내 삶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저질러볼 배짱이 생긴다.


글에는 이런 힘이 있다. 쓰는 동안 묻고 답하고 정리가 된다. 나는 나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삶이 내게 상처주면 주는 대로 슬퍼하고 좌절하고 무릎을 굽혀왔다. 하지만 알겠다. 세상에 내가 어떤 의미인지 찾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내가 어떤 의미인지 찾아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읽어보면 좋을 책: 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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