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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 에이전트 Apr 20. 2020

존재의 방식

사색

이 세계―부속물을 포함한―가 무슨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그것은 엄청난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모두는 이 주제를 아주 가까이에 두고 지낸다. 왜 사느냐, 라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나누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나는 이 광범위한 주제를 내 존재의 이유로 좁혀 물어왔다. 내가 태어난 목적이 그저 그런 시시한 데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촛불처럼, 나를 태워 뭔가를 밝힐 수 있는 도구로서의 목적―종교적으로 들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내 존재의 목적성을 일시적인 것보다는 항구적인 것에,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에, 개인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인 것에 두었다.


이렇게 보면 대단히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추구해온 것처럼 들리는데, 그 반대다. 나는 완벽하게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 다만 방향성―목적―이 없으니 어떤 기준이 만들어야 했는데, 그것을 나는 양심에 두었다. 양심을 따르려면 마음의 순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순수성을 유지하려면,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으려면, 온전히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만을 따라야 했다.


나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았다.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행복은 사랑만큼이나 가볍다. 그것은 감정일 뿐,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다. 행복을 위해 사는 것에도,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존재는 권태다. 피로이고 불안이다. 레비나스 철학에 따르면, 우리(존재자)는 순간들의 나열인 현재(존재)에 갇혀 있다. 레비나스는 존재자를 존재에서 떼어내야만 이 모든 존재함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레비나스는 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먼저 집중해보길 권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권태와 불안, 현재의 유한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존재)와 자아(존재자)의 연루를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유한성을 끊어내는 칼은 내가 아닌 타자에 있다. “자아가 자기에게 전념하기를 그만두고 타인의 호소에 전념하는 일”(옮긴이 서동욱)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를 넘어, 현재를 넘어, 지속하는 시간―미래―으로 간다.


나는 여전히 세계의 존재 이유가 궁금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이 경험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확증하지 못한다. 철학 역시 우리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해명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은 존재 방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부속물이든, 대상에 불과하든, 나 외에 수많은 ‘나’들이 존재하든, 삶과 죽음이 그저 러시안 룰렛 같은 것이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레비나스의 철학을 나는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읽어보면 좋을 책: 존재에서 존재자로, 에마뉘엘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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