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건 취직하고부터인 거 같다. 부모와 떨어져 홀연 단신 서울로 올라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신입 시절만 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회식이 있었다. 업무가 끝나고 부서원들과 함께하는 공식적인 회식이 아니었다. 남자들끼리 또는 선후배끼리 퇴근 후에 한 잔씩 하는 비공식 파티였다. 직원 대부분이 젊었고 팀장님 이하 부서장들도 젊었다. 퇴근 후 우르르 전철역으로 몰려가는 와중에도 비공식적인 행사는 급이루어졌다. 허름한 술집에서 대포 한잔을 즐기시는 팀장님은 늘 생고기 집으로 회식 장소를 잡았다. 신입이고 남자인 나는 회식에 참석 안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수륵한 생각을 한 것이다. 누가 신입직원을 신경 쓴다고 안가면 큰일 날 것처럼 개근상 받을 일도 아닌데 꾸역꾸역 참석했다. 허름한 고깃집에 팀장님이 한가운데 앉아
“사장님 고기 주세요”
하면 분홍색 조명에 드리워진 고깃집 한편에 큰 칼 든 사장님의 미소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손바닥만 만한 얇은 스테인레스 접시에 대충 썰어온 부위불명의 고기를 달궈진 쇠판에 올리면 야들야들한 돼지고기가 “치익”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기 시작한다. 퇴근하고 저녁 시간인 데다가 객지 생활하는 나로서는 든든한 저녁을 때울 수 있어 매번 회식을 하러 갔을는지도 모른다. 엄청 불편하고 어려운 자리였지만 받아주는 술도 넙죽넙죽 받아먹는 정도의 주량도 있었다. 윗분들한테 자꾸 얼굴을 비춰야 사회에서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거 같다. 조금이라도 고깃집에 늦게 도착하면 팀장님은
“젊은 놈이 선배들 잔뜩 있는데 늦네”
“이리와 후에 삼배 받아” 하시곤
연거푸 소주 석 잔을 따라주셨다. 빈속에 소주 석 잔을 들이켜고 자리에 앉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찌릿해 조용히 밥부터 먹었다. 삼겹살을 많이 안 먹어본 나는 입사 후 처음 간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고 크게 체해서 혼난 적이 있다. 가뜩이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던 빈속에 기름진 삼겹살과 소주, 달궈진 쇠판에 기름 넣고 볶은 볶음밥에 속이 놀라 탈이 났다. 동기 중에 술을 한잔도 못 먹던 친구가 있었는데 생고기 집 뒤편 불 꺼진 계단에 둘이 웅크리고 앉아 서로 친해진 추억도 있다. 그 친구는 술에 취해 힘들어했고 난 밥에 체해 힘들어했다.
그 친구는 나도 술이 힘들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줄 알고
“너도 술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했지만 나는 술로 고생한 적이 없었지만
“그래 너나 나나 열심히 살아야 해”
직장 앞 생고기 집은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늘 결단력의 부족인 나를 애먹게 했다.
시간이 흘러 생고기 집을 좋아하시던 팀장님은 퇴직하셨다. 다음 팀장님도 술은 좋아하셨지만, 생고기 집을 좋아하시지 않았다. 다행히 드나들던 고깃집 발걸음은 뜸해지기 시작했다. 기껏 가봐야 일 년에 한두 번 전 팀장님을 따르던 분들과 가끔 들려 추억팔이 회식을 하는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고깃집의 상호는 몇 번 바뀌고 실내 장식은 바뀌었지만, 예전 사장님은 분홍색 조명 아래에서 고기를 썰다 우리가 지나가면 얼른 나와 오늘은 안 들르느냐고 안부를 묻곤 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 부서에도 많은 후배가 들어왔다. 남자직원이 들어오면 우린 어김없이 옛날 선배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기 싫던 고깃집에 항상 후배들을 대동하고 요샛말로 “라떼”행세를 하며 나름대로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풀었다. 돼지고기에 탈이 나던 나의 위장은 직장생활의 연차가 늘어날수록 삼겹살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고 고기를 구울 때도 나를 찾을 정도로 엄청난 고깃집 내공의 소유자가 되었다. 많이 못 먹던 삼겹살을 지금은 퇴근할 때쯤이면
“오늘 같은 날 삼겹살이 좀 어울리지 않나?
하며 직원들을 꾀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언감생심 회식이란 말은 꺼내지도 못하는 시국이 되어버렸고 몇 년 전부터 직장 회식문화는 180도 변했다. 신입직원이 들어와도 약속이 있어 참석 못 한다고 하면 부서 회식은 변경되었고 삼겹살집을 가더라도 1차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고깃집을 좋아해도 젊은 친구들이
“오늘은 이태리 식당가요”
하면 회식 장소는 이태리식당을 급히 변경되는 일도 허다하다. 다행히 고깃집을 가도 또래들끼리 편하게 앉고 술을 권하는 문화는 완전히 사라졌다. 본인이 먹고 싶은 술을 먹으며 또래끼리 앉아 편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은 세상 좋아졌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친구도 있지만 나는 요즘 회식문화가 더 편하다. 내가 젊어서 힘들게 회식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요즘같이 빡빡한 세상에 밥이라도 편하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내가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비교 불가일 정도로 엄청난 스펙을 지녔다. 신입 때 며칠씩 밤을 새우며 준비하던 프레젠테이션도 유창한 영어로 잘도 떠들고 외모도 출중하다. 동기들끼리 휩쓸려 다니지도 않는다. 퇴근하고 바로 집으로 가 손수 저녁을 챙기고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젊은 친구들이 부럽지 않다. 이유는 심심하기 때문이다. 주위의 친구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나이 먹은 나만 빼고 챙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너무 빡빡하고 심심한 일상이다. 내 처지에서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고 판단은 되지만 내가 젊었을 때 만큼의 유대감이 없어진 건 확실하다.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예전의 삼겹살집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웃고 떠들고 선배들 앞에서 어렵게 술 한잔 받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 더 재미 있었던것 같다. 퇴직하면 한 달에 한두 번 만나는 직장 친구 두세 명은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외롭고 갈 곳 없이 방황할 때 같이 동고동락했던 직장 선후배는 나에게 큰 위로가 돼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젊어서 느꼈던 수직적 서열 관계에서 수평적 서열 관계로 바뀐 세상이다. 살코기와 기름이 골고루 섞여 치명적인 고소함으로 우리의 저녁을 유혹하는 삼겹살처럼 예전의 추억과 수평적 인간관계를 섞으며 즐겁게 살고 싶은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