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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든기억 깨우기 Sep 21. 2021

미장원의 잠든기억

머리를 짧게 손질하기 시작한 후로는 동네 미장원엘 자주 간다. 남자들은 아주 멋쟁이 아닌 다음엔 보통 한두 달에 한 번 간다. 마음먹고 가기보다는 목욕탕 가는 길에 들르거나 목욕탕안 이발소에서 간단히 머리를 정리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도 주인아저씨와 오다가다 인사를 할 정도로 친해진 곳이다. 상호도 미스터란 글씨만 덩그러니 쓰인 미장원이다. 흔한 액자 하나 걸려있지 않고 하얀 벽엔 판매용 샴푸만 달랑 몇 개 얹혀 있는 게 전부인 미장원이다. 예약은 당연히 없고 사람이 많아도 한 명당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남자 전용 미장원이다. 아이는 가격도 저렴한 아빠 단골집에 가서 같이 머리나 자르자고 하면 화들짝 놀라 기겁을 한다. 

”거긴 아저씨들만 가는 곳이라 저는 제가 가는 곳이 따로 있어 안 가요“

고등학교 다니는 놈이 머리를 예약하고 손질하고 친구들과 입소문이 잘난 곳만 가니 시절이 무섭단 생각이 든다. 블루클럽이 한창 인기를 끈 이후로 몇 개의 유사체인점이 생기면서 저렴한 남자 전용 미장원이 유행인 시절이 있었다. 주말에 가면 여자는 찾아볼 수 없고 부자지간에 멀뚱히 앉아 있거나 하얀 러닝을 입은 채 순서를 기다리는 할아버지들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이발하고 난 다음엔 머리를 손수 감고 손질하느냐고 마음도 편하다. 막상 머리를 손질하는 시간은 채 10분이 되질 않는다. 사람이 비슷한 스타일의 머리로 깎아 기계적으로 붕어빵 틀에서 뜨거운 붕어빵이 딸각 소리 내며 틀에서 찍어 나오듯 미장원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스타일은 비슷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는 항상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깎아주셨다. 80년대만 해도 남자가 미장원에 가기는 쉽지 않았다. 여자는 미장원 남자는 무조건 이발소를 갔다. 하지만 어머니는 꼭 미장 월엘 데려가 손질을 해주셨다.

“우리 아들인데 학교에서 머리를 짧게 깎으라고 했다는데 최대한 예쁘게 깎아주세요”

하시며 미장원 원장님한테 신신당부했다.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나였고 여자들만 잔뜩 모여있는 미장원에 사춘기 남자 혼자 앉아 있기란 무척 곤욕스러웠다. 어머니도 사내자식 옷 한 벌 사주시지 않으셨지만, 머리 손질만큼은 정성을 들여 주셨다. 머리가 단정해야 사람 대접받는다는 어머니의 생각이 난 늘 친구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학교 가는 만원의 버스 안에서도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는 화젯거리였고 교문 앞에서 용모검열 하시는 선생님도 애매한 머리를 보시면서, 단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워하셨다.

어머니 덕에 그나마 두리뭉실한 외모지만 머리 덕에 친구들과 항상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다 커서는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미장원엘 가지 않으셨고 엉성하게 깎인 머리를 보고서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도 낯선 동네 낯선 미장원에 가서 처음엔 망설였다. 어떻게 깎아달라고 해야 하는지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를 말 못 해

”자연스럽게 깎아주세요. “

하고 머리를 손질하면 후회된 적도 많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한 달만 지나면 또 자를 텐데 하고 잊어버리곤 했다.     

한 달 전에 요즘 유행하는 투 블록으로 깎아보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단골미장원엘 가서 아저씨에게 특별히 사진을 보여주며 부탁을 했더니.

”한 번도 안 깎아봤는데 아저씨 부탁이니 한번 깎아줄게요. “

하더니 이발기와 가위 손질로 금방 옆머리는 휑하고 윗머리는 바람에 날려 간질거리는 어색한 투블럭컷 머리가 만들어졌다. 어색해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누가 볼까 민망해 집에 와서는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매일 왁스를 바르고 출근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녔다. 직원들이 젊어졌다는 얘기도 했지만 여간 어색한 게 아녔다. 드디어 오늘 어색한 머리를 좀 편하게 바꾸고 싶어 퇴근길에 단골미장원엘 들렸다.

”아저씨 예쁘긴 한데 제가 게을러서 손질하기가 불편한데 알아서 깎아주세요. “

”저번에 투블럭컷 멋지던데 그럼 이번엔 유아인 컷으로 해 드릴게요. “

하시며 어김없이 이발기와 능숙한 가위질로 시원하고 짧은 머리로 금방 단정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주셨다.

”맘에 드시죠?“

”사장님은 머리도 잘 깎으시지만 사람 마음도 꿰뚫어 보시는군요. “

하곤 기분 좋게 미장원을 나왔다. 순간 어려서 손을 작고 미장원에 데리고 다닌 어머니가 생각났다. 내 마음을 잘 알아봐 주신 거 같은 미장원 사장님이 마치 어려서 데리고 간 어머니의 마음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에게 오늘 머리를 손질했는데 오랜만에 맘에 드니 기분이 좋아져 한달음에 자랑하고 싶었지만 혼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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