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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Mar 24. 2023

허니와 클로버

적당한 노트가 없어서 여기에..


제목은 아시다시피 Chika Umino의 오래 전 작품.

2000년에 일본에서 발간된 작품인데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죠.

예술이라는 청춘을 앓았던 사람들이라면,

1960년대 생도 2000년대 생도 같은 느낌이리라 믿어요.


당신을 처음 알았을 땐 스치는 시절이라 생각했어요.

세상 모든 비정상들과 상처받은 인간들을 모아놓은 것 같던

예대의 풍경.

저 역시 한 자리 차지했으면서

아닌 척, 빨리 대학졸업장을 얻고서 토사물 가득한 그 언덕을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사회가 인정해주는 루트를 따라,

가능하면 TV가 보여주는 그 환한 세상으로 탈출하려고 했죠.


그때 나는 퇴행한 채 느리게 자라는 중이라

당신의 그늘 속에서 어두운 광합성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요.

한번도 누군가의 1번이 되지 못했던 저는

예대라는 그 무서운 세계에서도 입 한 번 열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거기에서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이들이 너무 큰 어른들 같았어요.


허니와 클로버는 영화와 드리마로도 만들어졌어요.

아오이 유우의 인생의 컷 한 장이 바로 이 작품 속 장면이었다는 걸 이제 잊은 사람도 많겠죠?


하구미...

아름다운 건 같지만 아오이 유우가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건 원작의 하구미가 요정으로 착각할 만큼 작은 소녀였기 때문이죠.

천재란 일상과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작은 요정 같은 존재가 더 좋다고 생각했어요.

천재... 예대에 다니며 누군들 담아보지 않았겠어요?

누군들 질투하지 않았겠어요?

하구미는 너무 비현실적 존재라서, 일상엔 바보인 존재라서 오히려 주위를 감싸는 캐릭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 만화에는 진정한 외톨이는 없어요.

예대 학생이 하숙하는 건물 속 선후배들은 누구 한 명 빠뜨리지 않고 일상을 공유하죠.

실사판 예대의 깊은 구렁텅이는 나오지 않으니(그려도 볼 이가 없을 테니)

청춘물의 히트작이 된 것이겠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꿀 바른 식빵에 네잎클로버를 끼운 샌드위치가 뭉클했어요.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달콤한 행운을 가득 주고 싶은 건 직가로서의 마음이면서 그 시절 예찬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홀로 이 짙은 그늘에 남은 나는 알아요.

꿀과 행운은 끝내 안 오기도 한다는 걸.

요정처럼 위화감 없는 천재는 사실 없죠.

천재가 순수한 것도 아니고요.


아오이 유우처럼 아름답고 키도 적당해야 여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거의 모든 시간에 연습을 하는 것처럼...

돈이 중요했던 피카소처럼...


현실은 그림 속 세상처럼 warm tone이 아니니까요...


당신을 오래 사랑했어요.

나는 끔찍하게 오랜 세월동안 당신에게 무시당하고 학대받으며 버텨왔어요.

생활이 당신을 놓으라 할 때도 손바닥이 해지게 당신 옷의 실밥을 붙잡았고,

생활 속 나를 비웃을 때면 대책없이 무일푼이 되기도 했죠.

재능에 대해서 우리는 말한 적이 없었죠.

그건 애초에 거론할 거리가 못되었고,

당신의 사랑받는 존재들은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워서 감히 같이 서려 한 적도 없었죠.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싫어요.

당신에게 매달리는 나를 죽이고 싶어요.

한번도 좋지 않았던 세상,

난 그저 목소리가 필요했을 뿐인데...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정말 사랑할 존재가 아니라면 유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해요.

이 밤에도 이유 없는 사랑에 경멸하며 분열해가고 있어요.

난 자클린처럼 괜찮다고 말하진 않을 거예요.

당신과 결별하는 날이 오면 당신이 얼마나 나쁜지 말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날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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