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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l 06. 2023

사이코패스, 인류

- 바다에 사죄하며.

사건사고 뉴스와 자극적인 범죄 픽션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일상 용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누가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것은 심리학자가 정의내리는 것이겠지만,일반인으로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사이코패스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겁니다.연쇄살인이니 악마적이니 하는 자극적인 수사를 빼고 골자만 남겨봅니다.인간적인 감정에 무감각하고 인간적인 가치보다 다른 것에 크게 홀려 그것을 따르느라 인간의 생명조차 도구로 쓸 수 있는 사람.사이코패스란 대략 이런 기작으로 움직이는 인간형을 말할 죠.


요즘, 바다에 대한 뉴스를 들으며 여러 생각을 하였습니다.

IAEA의 발표가 나온 오늘은 더 잠이 안 옵니다.

서울대 원로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냈고, 아마도 그들의 후배쯤 되는 현장 연구자들이 '과학적'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쇼맨쉽이나 자극적인 말버릇을 가진 이는 마시겠다는 말도 했고, 그 뒤를 따라 정치인들이 바닷물을 마시느니 회를 먹느니 메인 쇼를 하는 중이지요.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어디까지나 관측과 자료와 시뮬레이션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겠지요. 자신의 과학적 발표가 쇼의 밑밥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쯤은요.

핵분열 원리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 원리를 이용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 실험을 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어떤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과학은 과학자들에게만 맡겨두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즈음 시작된 말이었습니다.

매우 모욕적인 말이지요.

노벨상을 받은 연구자들입니다.

두뇌로 겨루자면 대적할 자가 없는, 동시대 최고의 천재들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그 말에 발끈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과학자들은 자기가 욕먹는 것도 모를 만큼 자신의 과학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그 과학을 '일'이라고 말하며 돈을 주니,

그들이 연구하기에 바빠 사회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어도 그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받습니다.


그림에만 빠져 있다고 미치광이 소리를 듣던 고흐나 최칠칠 같은 예술가와는 다릅니다.

예술은 물질을 혁신하지 못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들지 못하니 사회는 예술가의 '일'을 '일'로 쳐주지 않지요.

돈을 받지 못하니 어른은커녕 사람 노릇하는 것도 힘듭니다.

그러니까 사회의 물질을 쌓을 수 있게 하느냐,

인간을 좀더 편하게 할 수 있느냐에 따라 비슷한 종류의 '취미'가 하나는 일이 되고 하나는 하등 쓸데없는 짓거리로 전락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대의 관점이죠.


과거에는 과학도 그저 취미였습니다.

레오나르도다빈치도 무기나 건물 설계를 돕지 않았다면 그 수많은 착상들을 남기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과학은 대부분 귀족들의 호삿거리였고, 근대에 이르러서는 유한 신사들의 심심풀이였죠.

데카르트는 심심해서 수학을 했고, 진화론으로 세계를 뒤흔든 다윈도 의사 아버지의 게으른 골칫덩어리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심사에는 열정을 쏟았죠. 장수풍뎅이, 화석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요.

하지만 학교 생활도 등한시하고 곤충과 생물에만 관심을 가졌으니 사회에 관심을 가졌을 리 없습니다.

누군가 비판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에 떠는 게 그의 일상이었죠.

그는 자신의 발견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버티고 있던 신의 세상을 무너뜨릴 스모킹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의 세상 안에서 보호받고자 마지막까지 몸을 사렸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다윈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과학자들의 대부분은 자기의 재미에 빠져 있을 뿐 세계에 대한 관심도 자신의 취미가 세계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없는 편입니다.

흔히 어떤 것에 리터러시라고 할 때 문맥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풀어 쓰자면 과학이 세상에 미칠 영향, 그리고 세상이 과학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명의 어른이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 끼칠 영향과 사회가 자신에게 끼칠 영향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될 수 있을까요? 그건 촉법소년들에게만 양해되는 게 아니었나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과학적 데이터라고 말할 때, 그들은 자신을 세상물정 모르고 놀이에만 빠져 있는 아이와 같은 상태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촉법소년의 나이를 지났으면서 자신은 세상을 모른다는 것을 떳떳하게, 어찌보면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죠.

 "숫자와 관측 결과와 시뮬레이션으로만 말한다."

그러고보니 어떤 검찰총장의 명언이 떠오르네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IAEA의 기라성 같은 연구자들과 네임드 연구자들의 과학적 결과는 정치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험의 불완전성과 분석의 한계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말했는데 보도가 안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악마의 편집을 당했다고 법원에 고소하시거나 언론에 제보해주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선배이자 선생님이었을 원로 학자들이 하신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지구에 산다고 하죠. 지구는 한자로 이렇게 씁니다. 地球 육지로 된 구형의 천체.

틀린 단어입니다. 과학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지구의 71% 이상이 물로 되어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우리는 水球, 바다 행성에 살고 있습니다.

바다에게는 불행하게도 지구는 암석형 행성이라 아래로 향하는 중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더러운 것들이 아래로 아래로 흐릅니다.

바로 바다로요.

모든 것을 받아 안으니 바다라고, 누군가는 말했지만

모든 것을 받아 안아주는 부모님에게 함부로 대하면 비난 받는 것처럼

바다에게 함부로 하는 것도 비난 받을 일입니다.


  

바다가 모든 생명의 고향이라서가 아닙니다.

바다는 빈집만 늘어가는 우리 고향 같은 처지가 아니라, 지구 상 어떤 도시보다도 많은 생명이 살고 있는 터전입니다.

인간은 아닐지언정, 포유류를 포함하여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의 스위트홈이라는 것이죠.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내보내도 무리 없다는 과학적 결론들은

과연 생물체의 집으로서의 바다 전체를 충분히 고려했을까요?

그렇잖아도 인간으로 망가져가는 바다에 오염수라는 변수를 덧붙였을 때, 그 방정식은 바다 전체에 대하여 해를 얻을 만큼 자신 있는 실험이었을까요?

시뮬레이션이 쫓은 원소들이 너무 적지는 않았을까요?

아직 해류의 움직임조차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데, 얼마만큼의 확실성을 갖고 시뮬레이션을 돌렸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과학 연구자들에게만 질문을 쏟는 것은

쇼맨십 있는 과학자들이 대부분 젯밥에 관심있는 프리라이더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짜 과학자들 중에도 쇼맨십이 넘치는 경우도 있으니 제가 무식해서 그분들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요.

다만,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쇼를 다른 방식으로 해주기 바랄 뿐입니다.

일단 바닷물을 마시는 건 바다 생물이지 인간은 아닙니다.

그러니 마셔서 증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적어도 일본이 아직 오염수를 방류하지 않았다면 지금 횟집에 있는 물고기들은 오염수 속에 살아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쇼가 아니라 증명을 하시고 싶은 진심이 있으시다면 후쿠시마에 원전 오염수(방류에 임박한)에 가셔서 그 물속에서 1년이라도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물속에서 태어나 자라난 횟감을 먹으면서 말이죠.


  

우리는 미세먼지만 껴도 숨쉴 수가 없느니, 오염도가 어떻느니, 중금속이 몇 마이크론이니 따지고 듭니다.

그게 잘못된 건 아니지요.

공기는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호흡기뿐 아니라 피부와 환경 모두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 미세먼지에 납이나 석면이 아주 조금 들어있다고 상상해봅시다.

멀리서 날아온데다 공장도 처리 기술이 훌륭해서 미세먼지에 섞였을 뿐, 채취한 공기 내 치명적 중금속 납과 석면은 의미없을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불만이 없을까요?

몇만년이나 남아있을 이 중금속 공기 속에서 평생을 사는 게 아무렇지 않을까요?

미세먼지를 바닷물로, 우리를 넙치나 해달로 바꾸면 어떨까요?




큰 해류의 흐름에 따라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그 물은 태평양을 크게 돈 다음 우리 바다까지 올 겁니다.

지구는 무지하게 크고, 태평양은 바다에서도 가장 크고, 우리나라는 작으니 몇 년이 지나 우리에게 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바다에는 칸막이가 없습니다.

하늘에 칸막이가 없는 것처럼, 그곳의 물이 이곳을 채웁니다.

희석되어 우리에게 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 세계 자본에도 칸막이가 없으니 물고기를 잡으려면 가장 큰 바다로 가는 게 좋겠지요.

아, 칸막이가 없는 바다에 사는 동물들한테는 여권도 없습니다.

어디에서 놀다가 우리 시장으로 오는 그물에 걸릴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과학적이지 않은 일로 죽어갈 겁니다.

설사 원전 오염수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보약이라고 해도,

설사 우리나라에 올 때쯤엔 그 많은 바닷물과 섞여 민물이 될 지경이라 해도,

공포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시장을 잘 아는 각국의 정부와 단체에서 왜 그걸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들도 확신할 수 없는 비과학적인 내용으로 나머지 목소리들을 억누르려 하지만, 공포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가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은 바다로부터 무너질 테죠.

무엇보다 인간의 본성이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하는 절망이 가장 큽니다.

이 모든 일의 바닥에는 돈에 홀린 인간이 있습니다.

돈을 위해 바다와 자연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무시하고 생명이라는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므로 인간의 생명조차 도구로 쓸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자면 염치도 없는 인간 중심 사고가 끔찍합니다.

태어난 지 몇 만 년도 안 되는 생명 종이 그 많은 생물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끔찍합니다.

아직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생명으로 가득한 바다, 아니 이 천체.

한낱 백년도 안 된 망원경으로 과학적인 단언을 한 여러분들,

당신들의 실험은 불완전합니다.

특히 사이코패스 인류의 돈에 현혹된 이 사회의 방법론으로는 말이지요.



아, 오늘 들었는데 과학연구예산 3조원을 날리라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누군가 말했답니다.

단기 이익에만 충실한 주주다운 판단입니다.

과학도 딱히 '일'로 쳐주지 않는 것 같으니 이데야말로 옥석이 가려지겠네요. 쇼맨십의 과학자들이 무엇을 위해 과학을 팔았는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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