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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Mar 06. 2024

나는 없지만, 있기도 한 고양이

그림의 고양이


어릴 적,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고양이를 싫어했어요.

주로 성격이 야멸차고, 쓸모없이 먹이만 축내는 요물이라고 하셨죠.

애완용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거의 없었고, 그렇다고 길고양이가 많이 보이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애완 고양이가 없어 유기 고양이도 없었던 것 같아요. 

끔찍한 애완동물 공장도 없었고, 판매점도 없었고 말이죠...

그래서 제 어릴 적 고양이는 체셔 고양이였어요.

'체셔'가 영국의 한 동네의 품종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였지만 상관없었어요.

제게 '체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품종의 고양이였거든요.

다른 고양이들과 아주 비슷해보이지만,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품종적 특성이 있습니다.

말하는 고양이라고요?

그건.. 좀 흔한 특성이고요...

진짜 특성은 '투명 OLED 모니터'처럼 아주 서서히, 입가에는 찢어질 듯 미소를 지은 채 사라지는 겁니다.

아직까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품종의 고양이는 '체셔' 말고는 보지 못했는데,

혹시 보신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사례로 깊은 감사를 드리려고......  

어른이 되어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저는 아마도 영원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SNS에 나오는 대단한 분들처럼 헌신하며 시간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몇 시간씩 고양이 영상과 사진을 보고, 

지나가다 보이는 고양이 사진을 찍는데 만족하곤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너무나 좋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묘생이란 무엇인가?>.

네, 고양이 묘자를 쓴 묘생猫生, 즉 고양이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훔치고 싶은 제목인데, 

마치 내 것이었던 것을 빼앗긴 양 질투가 났지요.  

어이없다고요? 하지만 이 책을 한 번 보세요. 제가 그럴 수밖에 없이 예쁘잖아요.

글그림/ 이영경

이미 훌륭한 그림책 작가님이 또 이런 선물을 쓰고 그려주신 것에 감사해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번 깨달았어요.

"과연 그림책의 대가시구나."

"정말 좋은 그림책은 시와 같구나......."

"과연 고양이는 사랑스럽구나."


책을 잘 읽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시를 좋아하시죠.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처럼 단 3줄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니까,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가슴을 쿵하게 만들 예술을 누리고 싶은 욕심많고 바쁜 분들에게

저는 시를 권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림책도 권하는 편이죠.


그림책은 시와 비슷합니다. 

10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분씩 10번을 읽는다 해도 완독이라 할 수 없는 것 또한 그림책입니다. 

좋은 시가 두고두고 곱씹게 하는 결이 있는 것처럼 그림책도 짧고 깊기 때문이지요.


『묘생이란 무엇인가』는 좋은 시이면서 한 편의 인생을 담은 소설과도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피조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는 고양이가 등장하니까,

일단 사랑스럽죠.

그림책은 원래 사랑스러운데, 고양이가 주인공이라면 이건 뭐, 말할 것도 없죠.

고양이가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귀여워지는 마법이 있거든요. 

이영경 작가님의 이름은 몰라도 아이를 키운 집에는 이 작가님의 책이 한 권쯤 꽂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더 기대하며 책을 읽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귀여운 고양이와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책 곳곳에 보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그림만 살펴보아도 행복한 시간이 오래 지속됩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왠지 모를 먹먹함을 선사하는 까닭은 이 책이 비슷한 시기에 작가 곁을 떠난 두 동반자, 

남편과 고양이의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묘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은 남편이 늘 하던 질문이었다고 해요.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사들이라면 한번쯤 이 귀여운 피조물에게 해보고 싶었던 질문이겠죠.

그 곁에서 두 사랑스러운 존재를 보았을 작가의 시선이 책 모든 곳에 스며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던 남편도, 대답 한 번 하지 않았던 고양이도 작가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그 이별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 작가님은

남은 사랑을 다해 이렇듯 사랑스러운 그림책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비밀인데요,

이 책에는 Q. 묘생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A. ...... 가 존재합니다.

책을 열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묘생의 길>을 찾아보세요.

이 책은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행복한 추억으로 인해 삶의 또 다른 교훈을 얻는 인생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장을 닫기 전에 작가와 함께 ‘묘생의 길’을 받아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여유가 없어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하는 분들에게, 

좋은 그림책 한 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책을 나누어서 참 행복하고요...         



추신:

독자 여러분께...

브런치를 왜 시작했는지 생각해보니, 이름이 좋았습니다.

외롭고 고단한 한주가 끝나고 늦잠 자고 일어난 토요일, 느즈막이 인스타각 음식과 차를 먹으며

누군가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마음... 그렇게 이 공간을 꾸미고 싶었어요.

하지만 현생에 치이고,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다보니 잘 쓰지 않게 되더라고요.

여러 매체 중에 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책읽기라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동화책이요..

<동화 넘어 인문학>처럼 계속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혹시 '책'이라는 '쉼'으로 어떤 책이 좋을지 궁금하신 분은 댓글을 달아주시겠어요?

수많은 다독가들과 지성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혹시나 제가 추천할 수 있다면 

가슴 깊이 담았다가 꺼낸 책들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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