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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Jun 08. 2024

혹하고 싶지 않은 빛에 대하여

전전반측, 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로 정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라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사람은 대개 모든 일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고,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기를 바라니까요. 

하지만 인간을 둘러싼 정말 중요한 것들은 전부 다 불가지不可知, 알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자신이 태어날 줄 알고 태어난 이가 없고, 자신을 둘러싼 가족이라는 존재들이 왜 그들이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왜 이렇게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한갓 미물에 불과한 인간 하나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인식체계는 의문을 버릴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철학이나 종교가 답을 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몇 천 년의 사고실험은 전부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이미 길가메시가 깨달았던 그 대답. 

죽음을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것. 

그런데 인류 최초의 서사시에 이미 나와 있던 대답을 인간들은 매번 되풀이 합니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에 맞섰던 반신반인 길가메시의 모험은 영웅적이고 떠들썩하지만, 

제임스 조이스가 이미 보여주었듯이 여기에 태어난 존재들은 저마다의 오디세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소하고 진부하며 반복적이더라고 말이죠...

이제는 실증적이고 명확하다는 과학을 통해 같은 답이 나왔지만, 그래도 인간은 태어난 이상 답없는 질문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으로부터 혹은 타인으로부터... 시작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지만, 저는 이 질문이 인간으로서의 무게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벗어날 수 없고, 감히 죽음을 떠올릴 만큼 극한의 고통을 준다는 면에서요.......

그리고 한번 빠져나와도 온 시간에 널린 허방에 빠지기에, 

몇 번 살아남다 보면 구멍나거나 매듭이 풀린 것이라 할 지라도 나룻배 한 척, 뗏목 하나 갖게 된다고요..

    

<환상의 빛> 표지


저에게 <환상의 빛>은 그런 책 중의 하나입니다.

누군가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말하는 책인데, 어째서 저에게 떠오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책에 의하면 혼을 잃은 자에 속하는데 말이죠.

이상한 말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의 독백은 제게 환상의 빛 같습니다. 

아련하고 나른하게 끌어당겨서 다른 환상에 빠질뻔한 순간을 잡아줍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모양입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존재의 기본 전제조차 인과관계가 없으니,

존재를 향한 질문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인간적인 감정들이 있습니다.

일, 관계, 행동....... 인간은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되어 있기에 기본적인 논리 회로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 감정이 개입하면서 고장이 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 사랑, 삶... 이 모든 것 없이 어찌 인생이 완성될까요?

그리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일들에서 '그저 받아들이기'라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인가요.. 



불가해하다고 느껴지는 사건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가해한 이해란 매우 개인적이어서,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현실 속에서 이런 일을 맞닥뜨렸을 때, 혹은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왜 그걸 이해하지 못하느냐, 그만 생각하라고 스스로 혹은 타인을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지만, 그저 지나가는 건 아니니까요.

치명적인 흉터를 남기면서, 운이 좋으면 슬쩍슬쩍 베이면서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불가해함의 강을 건너는 일입니다.


이제 잠시 책 속으로 들어가볼까요..

 <환상의 빛>에는 인생의 불가해함 앞에 반은 넋이 나간 여자가 나옵니다. 

남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유서도 없고 그럴만한 사정도 없었습니다. 

여자는 이제는 물어볼 수도 없는 그 사정을 이해하느라 일상이 온통 안개속 같습니다. 

슬픔도 비애도 아닌 감정이 그녀를 계속 독백하게 합니다. 

남편을 향한 그녀의 혼잣말은 점차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하고, 

고단한 삶에 묻혀 흘러간 불가해한 경험을 다시 꺼내놓게 만듭니다. 


기쁨이나 슬픔, 성공과 실패. 

이렇게 명료한 인생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때로는 흐릿한 안개 속에서 시들어가는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인생을 보여줍니다. 

가슴 시린 수수께끼를 몇 개나 품고서 다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짧고 아름다운 소설이죠.

혼이 빠져나가고 있을 때, 제가 지푸라기처럼 이 책을 붙잡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의미의 불가해한 위로가 종이냄새와 함께 다가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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