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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Sep 29. 2020

천천히 소소하게 글 한 편 쓰기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다

"무조건 따라 하면 책 한 권 쓸 수 있습니다!"


사기꾼도 아니고, 명색이 글 쓰는 사람인데, 이런 말을 하고 다닙니다, 회사에서.

제가 다니는 회사는 과학 연구를 하는 곳이에요.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모여 있고, 재미있는 연구 성과가 많은 곳이죠.

물론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과학 연구를 하는 곳이지만 연구자들만 있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으니까, 연구자가 아닌 분들도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죠.


그런데 제가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좀 재미있습니다.

정확히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력서를 쓴 계기라고 해야 맞겠군요.

그전까지 연구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시작은 소설이었습니다.

어떤 소설을 준비하는데, 꽤 많은 전문 지식이 필요했지요.

원래 소설을 쓰기 전에 취재 기간이 길고 그 양도 많은 편인 저는 도서관이며 서점에 다니며 일차 자료라 할 수 있는 책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필요한 자료들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점은 물론이고, 국립중앙도서관, 심지어 네이버, 구글 검색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죠.

아니, 영문으로 검색하면 논문은 좀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문 논문을 제가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죠. 게다가 영문도 앞의 초록에만 있을 뿐, 한 두어 장 지나가자 수식과 알 수 없는 그래픽으로 가득한 논문이었죠. 제게 그런 자료들은 자료라 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스텔라> 각본을 쓰기 위해 메사츠세추 공과대학을 4년이나 다닌 조너던 놀란처럼 능력이 있어 대학을 다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러던 중에 우연히 그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출판을 하기도 하는데, 마침 관련 인력을 뽑고 있다는 정보를 찾았죠.

잘하면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겠구나(물론 생활비도 충당이 될 것이고),

아주 단순한 생각에 이력서를 썼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인터스텔라 스틸

과학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의외로 글쓰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논문을 쓰시는 분들이지만, 대중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을 어렵게 느끼고 있었지요.

그리고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 전문가들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저 평범한 글 한 편 쓰는 것에 대하여,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고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생각지 않게 전문 지식 탄생의 '현장'에서 서게 된 저는 한두 번의 경험이면 익숙해질 글쓰기 기술 때문에 대중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는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지는 지식들이 아까웠죠. 그분들이 글쓰기를 쉽게 할 수 있어서 열심히 대중과 소통했다면, 제가 찾고 싶었던 자료들이 그렇게까지 없지는 않았을 겁니다. 물론 그랬다면 저는 지금 이 회사에 없었겠죠.


아무튼 저는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죠.

바로 과학자와 전문가들에게 어떻게 글을 쓰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말이죠.

그래서 저는 탐나는 전문지식을 가진 분들께 다가가 세일즈맨처럼 큰소리를 치기 시작한 겁니다.


"무조건 따라 하면 책 한 권이...."


미리 말하지만, 일종의 사기이긴 합니다.

책 한 권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신경 쓰지 않고 나오는 결과물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런 의미에서요.

하지만 저는 이분들과 책이라는 산을 오르며 자신의 전문지식을 세상의 지식으로 내놓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글 쓰는 일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해도, 익숙하지 않은 도전이 편할 리는 없죠. 만일 저에게 누군가가 '무조건 따라 하면 미분적분을 기막히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도 저는 도전하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대중에게 자신의 지식을 내놓고 싶은 전문가들을 위해 제가 연구자들과 함께 하는 과정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하지만 이건 글쓰기에 대한 글은 아닙니다.

글쓰기에 대해 말할 만큼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데다, 시중에 좋은 글쓰기 책은 많으니까요.

그보다는 전문가의 지식을 세상에 내놓는 방법에 대한 글이라고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늘리고, 전문가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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