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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Dec 30. 2019

웃음보장  책들을 발굴하며

- 웃으면 복이 와요.

나이든 사람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어차피 늙으면 주름투성이일텐데, 그 주름의 형태는 평소 얼굴 표정이 결정한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지요.

이왕 지는 주름이라면 웃는 표정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나이 들수록 웃을 일이 적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때는 유튜브라도 열어서 웃기는 동영상이라도 보곤 하죠.

그런 면에서 웃음이 헤픈 사람은 유리한 것 같습니다.

저는 모든 감정에 유리한 사람입니다.

웃음의 허들도 굉장히 낮아서 말장난부터 아재개그까지, 웬만한 것은 다 웃기죠.

그래서 책을 읽다가도 배가 아프도록 웃곤 합니다.

한번은 지하철에서 읽다가 중간에 내리기까지 했죠. 너무 웃겨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야밤의 공대생 만화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 때문이었습니다.

컴퓨터의 존재 이유가 오버워X라고 생각하면서 컴퓨터의 구조를 연구하는 공대생이 아이패드를 산 기념으로 그린 만화를 책으로 만들었다는데, 이런 공대생이라면 바이런 보다 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을까 싶네요.. (훗)..

황당하거나 괘씸한 과학자들의 일화에 대해 몇 가지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유쾌하고 명료하게 정리한 책을 만나니 즐겁더군요. 에피소드마다 적어도 2번씩은 깔깔대고 웃었으니, 웃으면서 과학자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까지 알게 되는 이익이 있는 책입니다.

(덧:  컴퓨터 인간 폴 디랙도 결혼을 했는데 '우리는 왜?'라고 하도 절규를 해서 위키에서 사진을 검색해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공대생들은 어떤 대화는 말의 내용이 필요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ㅎㅎ 물론, 나 역시 폴 디랙과 결혼한 여성의 취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대생들의 절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인공지능 인간.... 폴 디랙...이지만 슈뢰딩거 보다는 낫...)


 두 번째로 소개할 책도 만화입니다.

사실, 만화를 소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화야말로 웃음의 대 천사 장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해드리는 이유는.... 그냥, 단행본으로 ... 그냥, 저자의 일상생활 수필 같다고......

<음주가무 연구소>의 어느 페이지

아무튼 누구나 이런 표정으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럴 수 없는 처지죠. 왜냐하면 이 작가는 <음주가무연구소>라는 사조직을 운영하는 만화가니까요. 이 책은 술 마시는 인간에 대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상천외한 음주 문화, 주정 에피소드, 추태 에피소드 등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 만화가가 누구냐구요?


<음주가무연구소>의 어느 페이지

무려, 니노미야 토모코.

무려(2), <노다메 칸타빌레>의 작가입니다.

아련히 들려오는, 치아키 센빠이~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그린> 등 주로 천재를 잘 그리는, 그 자신이 천재인 니노미야 토모코....

<음주가무연구소>를 읽다가 웃다보면, 만화 속 캐릭터의 엽기 행각이 허구가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는 지독한 사랑의 기록, <콜레라 시대의 사랑>입니다.

51년 9개월 4일, 널 만나는데 필요했던 시간...

이렇게 말하면 뭔가 로맨틱해보이지만, 정신차리세요... 51년입니다.

명 짧은 사람은 사랑도 못 한다는, 결국 존버가 승리하는 사랑 이야기 <콜레라 시대의 사랑> ..... 이라고 하면 마르께스 님께서 화를 내실지도 모릅니다...


페르미나 다사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바로 매일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종신형을 선고 받은 것이었다.
제시간에 내와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도 완벽해야 했고,
그에게 묻지않고 그가 원하는 음식을 정확히 만들어내야만 했다. (...)
그는 자기가 원하던 바로 그 음식,
그것도 부족한 점이라곤 없는 음식을 먹고 싶어했다.
고기는 고기 맛이 나서는 안 되고, 생선은 생선 냄새가 나서는 안 되며,
돼지고기는 옴 냄새가 나서는 안 되고, 닭고기는 깃털 냄새가 나면 안 되었다.

                                                                - <콜레라 시대의 사랑2>, 민음사, 107-108


이 책은 위에 소개한 책처럼 데굴데굴 구를 만큼 웃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결혼에 대한 작가의 서술처럼, 낭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작가의 신랄한 표현들이 웃음이 나죠.


사랑이 너무 지겨워서, 미사여구를 뺀 사랑의 진실을 알고 싶을 때, 아니면 이 겨울, 커플들을 비웃으며 현재를 즐기고 싶은 솔로 여러분에게도 남미의 마술사 마르께스 할아버님의 웃음 가득한 이 소설을 권합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이죠.

그런데 진실도 비슷합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실들은 때로 미친 듯이 웃깁니다.

과학적 사실이 그것을 재치있게 서술하는 것만으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재치있게'가 어려운 일이죠. 데이빗 보더니스는 이 일을 굉장히 잘 하는 작가입니다.


공중으로 발사되어 나가는 재채기 앞에서 티슈는 무용지물이다.
손님의 코에서 발사된 재채기는 시속 65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데 …… “나무의 잔가지를 부러뜨릴”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손님이 들어 올린 하찮은 티슈 정도야 왜 못 뚫겠는가.

 - 위의 책, 183∼184쪽


재미있는 소설 중에 <보트 위의 세 남자>도 있습니다.

영국 소설 중에 읽다가 페이지를 덮고 한참을 웃어야 할 책들이 꽤 있는데, 그 중 이 책을 빠뜨릴 수가 없죠.

조금 긴 구절을 소개하며


배가 부르면 만사가 오케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고 세상에 대해서도 별 불만이 없다.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양심에 꺼릴 게 없으면 마음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그런 상태가 되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돈도 덜 드는 데다 무엇보다 쉽다.
충분한 양을 소화도 잘 되게 먹고 나면,
사람은 웬만한 일은 다 용서를 하게 되고 포용력도 한층 넓어진다.
마음이 우아하고 친절한 사람이 된다.
소화기관이 이토록 우리의 지성을 지배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화기관이 일하지 않으면, 우리는 일을 할 수도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우리의 감정과 열정을 지배하는 것도 다 우리의 소화기관이다.

 달걀과 베이컨이 들어가면 그것이 명령을 내린다.
"일해!"
비프스테이크와 흑맥주가 들어가면
 "가서 자!"라고 말한다.
찬 한 잔(한 잔당 두 스푼 정도, 삼 분 이상 우려내지 않는 게 좋다)을 마시고 나면
 그것이 뇌에게 말한다.
"이제 깨어나서 너희 힘을 보여줘. 감동이 있어야 해. 깊고 온화하고 분명한 시선으로 자연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거야. 파르르 떨고 있는 너의 사상의 흰 날개를 펼치고, 신을 닮은 너의 영혼 아래 소용돌이치는 세상 위로 날아오르는 거야. 불꽃 일렁이는 별들의 긴 행로를 지나 영원을 향해 열린 문으로!"
따뜻한 머핀이 들어가면 그것은 말한다.
"머리야 둔해져라, 들판의 야수처럼 축 늘어져라. 맥 풀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뇌 없는 동물처럼, 상상의 빛, 희망의 빛, 두려움의 빛, 사랑의 빛, 인생의 빛도 알지 못할지니."
브랜디가 충분히 들어가면 그것은 말한다.
 "웃어라, 굴러라. 동료들이 웃을 수 있게.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여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어라. 재치와 의지가 나란히 양옆에 서서, 마치 새끼고양이들처럼, 반 인치 알코올에 빠져버렸을 때, 사람이 얼마나 한심해지는지를 보여주어라."
 우리는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없는, 위장의 노예일 뿐이다.

도덕성과 정당성을 좇지 말게나, 친구여!
방심하지 말고 위장을 잘 살피시고, 주의 깊은 판단력으로 소화를 시키게나.
 그리하면 덕과 만족이 따라와 그대의 심장을 지배하리니,
그대 자신의 노력은 아무런 필요가 없을 것이로다.
그대는 훌륭한 시민이 되고 사랑스런 남편이 되며 자애로운 아버지가 될지니,
그대 존귀하고 충실한 인간으로 살 것이다."



웃음은 태양이 될 수 있는 번개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라 일조량이 적은 요즘, 느닷없이 터지는 웃음이 마음 속 발전기에 불을 붙일 수 있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 읽기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그래서 책 속의 웃음이 더 크게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책읽기는 그 자체로 마음을 위로해주니까, 그 속에서 햇빛처럼 환한 웃음을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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