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 Oct 08. 2020

당신의 지식은 가치가 있습니다.

- 글쓰기 시작하기

 전문가들은 자기 검열에 익숙합니다. 논문은 작은 오류로도 그 신뢰성이 훼손되기 때문에, 숫자, 단위까지 꼼꼼하게 살피죠. 평범한 사람도 그렇겠지만, 전문가들이 주장에 대한 반론에 예민한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전문 분야의 지식이란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하나의 연구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나의 연구가 발표되면 후속 연구가 이어지는데, 그것이 처음의 연구 결론을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오류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심각한 반론은 전문가가 그 연구를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의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걸렸던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론이나 설이 진리로 인정받으려면 계속되는 반론에도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전문가가 전문가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엄정한 잣대를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바로 이러한 습관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중적인 글을 쓰기 어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반론에 대비하고 사는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공에서 1mm만 벗어나도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있죠. 진리가 아닌 한 확언하는 것도 꺼려하고, 완벽하게 아는 내용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중적인 글쓰기라는 점에서 이것은 전문가의 단점이며 동시에 장점입니다. 우선 장점인 이유는 이토록 엄밀한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쓴 지식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대중적 전문 도서는  비전문가가 집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성실한 자료 수집과 학습 등으로 원고를 쓰고 전문가에게 감수를 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다룰 수 있는 수준은 성인에게는 상식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개략서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뜻이죠.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든가, 인공지능, 기후변화 등 현재 세계를 이해하려면 교과서 수준의 지식으로는 부족합니다.그리고 이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독자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합니다. 만약 이 부분을 비전문가가 쓴다면 반드시 뭐라고 써야할지 모호한 내용과 전문가가 아니면 쉽게 풀어쓰기 힘든 연구들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비전문가가 전문적인 내용에 대한 글을 쓸까요? 당연히 전문가들이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판계에서는  전문 분야의 저술가가 귀하죠. 물론 비전문가 중에서도 전문가 이상으로 써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사람이죠.

다치바나 다카시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라. 책이 많이 비싸졌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값은 싼 편이다. 책 한 권에 들어 있는 정보를 다른 방법을 통해 입수하려고 한다면 그 몇 십 배, 몇 백 배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이언숙 역, 청어람미디어, 81쪽


일본의 유명한 기자이며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세계적인 독서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습니다. 20만 권이 넘는 책을 정리하기 위해 빌딩을 세울 만큼 열정적인 독서가죠. 이 20만 권의 책들 중 많은 수가 제 생각에는 그의 저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뇌부터 우주까지 많은 주제를 종횡무진하며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의 책은 전문가들도 납득할만한 수준이죠. 그리고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와 전문 지식에 대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전문 서적을 쓸 수 있는지 밝힌 적이 있는데, 한 분야의 전문도서를 쓰기 위해 기본적으로 자기 키만큼의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개론서부터 전문서적까지 훑고 나면 최신 논문도 다 읽는다고 하죠. 그리고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가 심층 인터뷰를 합니다. 이 심층 인터뷰가 가능하려면 엄청난 지식이 쌓여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세노 갓파 그림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비전문 저술가는 드뭅니다. 보통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저자의 원고를 전문가가 감수하는 형태죠. 그렇기에 전문가들이 직접 쓴 전문서가 아쉬운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보았듯이 지식에 대해 너무 엄한 잣대를 들이대기에 흔쾌히 대중도서를 쓰고자 하는 전문가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혹 쓰더라도 자기 분야 외에는 한 단락도 쓰려고 하지 않으니, 책 한 권을 이룰 수 있는 저자가 많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대중적인 글을 쓰고 싶은 전문가들은 좀 덜 걱정하고, 좀 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를 이해시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라도요. 

자신감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만, 굳이 몇 가지 꼽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평생 그 분야에서 공부했고 현재도 하고 있으므로 이미 그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물론 주위에는 같은 분야 사람들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세상 전체가 그 분야에 무지하고, 심지어 도서관에 가도 그 분야에 대한 책이 없으니, 그 지식을 세상에, 대중에게 전해줄 사람은 소통하기로 마음먹은 자신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 자신의 전문 분야가 쓸모 있는 지식정보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이 자신감은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이 좋겠죠. 일단 기사 등 원고를 써달라는 요청이 왔다면, 그 정보가 세상에 드물어서 저자를 찾고 있었다고 믿어도 됩니다. 매체든 출판사든 아무렇게나 제안을 하지 않으니, 제발 자신의 전문지식이 대중이 알 필요가 없다고 속단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고 판단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분야의 사람들뿐이고, 세상이 궁금해한다면 그 전문분야는 세상을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세 번째, 낡은 지식이라고 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전문 분야의 지식은 초 단위로 늘어나고 어제는 대단했던 성과가 오늘은 너무 오래된 방식으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관련 분야의 정보가 전혀 없는 세상에서 낡은 지식은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재의 최신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만 연대기적으로 풀어써도 그 분야의 훌륭한 개론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은 이미 현장을 떠나 이제는 다 쓸모없어진 지식이라고, 그래서 대중에게 말해줄 것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전문가들이 굳이 나서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