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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Oct 06. 2020

전문가들이 굳이 나서야 할까?

- 전문지식은 왜 부족할까?(2)

전문지식이 부족한 두 번째 이유는 과학자, 혹은 전문가들이 굳이 나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엉뚱해 보이겠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의 탓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전문가들(과학자나 연구자) 중 꿈을 갖고 진로를 선택한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 대부분은 내가 선택한 전문 분야가 어떤 일을 하는지 채 알지 못한 채로 학부나 과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자신의 삶을 거의 규정하게 될 결정을 수능 성적만으로 정하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전문분야란 각기 흥미 있는 점이 있으니, 덜컥 입성했더라도 의외로 적성에 맞아 진짜 전문가로 성장하지요. 과학 등의 전문 분야에서 한 명의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사실상 도제제도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대부분 결국 그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죠. 즉, 어떤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나 작은 지식으로 진로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에 맞춰 학부를 정하다 보니 어쩌다가 전문가가 되는 길로 흡수되는 것입니다.


 

베이컨, <신기관> 표지


 전문가만 양성한다고 볼 때, 이런 입시제도가 크게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은 없습니다. 어차피 필요한 지식은 도제제도 안에 있으니까요. 그 제도 안의 전문 지식과 정보는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지식이라 번역된 것도 많지 않죠. 과학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가 시작한 분야가 있다 손 치더라도 그 지식은 영어로 생산해야 합니다. 그래야 외국의 유수 학술지에 실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영어권 태생 과학자는 그 외 언어권 학자보다 생산성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영어는 물론, 영어로 논문 쓰는 법까지 훈련을 해야 하니까요. 마치 조선시대 식자들의 글이 한문으로만 쓰였고, 그들 간의 소통도 한문으로 이루어졌듯이, 과학자들, 그리고 꽤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영어로 소통합니다. 과학자들은 국어학자가 아니기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분야의 용어들은 전부 외국어죠. 컴퓨터를 전뇌라 번역한 중국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는 전문가들로부터 흘러나온 외국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합니다. 보통의 언어생활이 이러하니 전문 분야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래서 ‘전문용어’라고 불리는 단어들은 실은 번역하지 않아 고정된 외래어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말을 후학들이 따라 고, 그렇게 한 분야의 용어들은 점점 일반인들이 모르는 말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들의 후배가 될 사람이라면 당연히 외국어를 알아야 하고 ‘전문용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에 이너 서클 안에서는 의사소통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의학드라마에서 의사들끼리 하는 대사 대부분에 자막이 달리는 것을 떠올린다면, 전문가들의 ‘전문용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신라 향가에서 조사를 뺀 나머지를 다 해석해야만 했던 기억을 되살려도 좋습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어, 독일어, 일본어로 뒤섞인 ‘전문용어’들을 비판할 수만도 없습니다. 전문분야, 특히 과학 분야는 때로 신속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때도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NATURE>, <SCIENCE> 같이 세계 유수의 잡지에 실릴 연구 성과를 이루거나 SCI급 논문을 쓰려면 연구에만 신경 써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대중이 전문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대한민국 지식의 총량에 자신의 전문 분야가 단 1g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은 과학자나 전문가 개인에게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죠. 심지어 출판을 해봤자 많이 팔리지도 않고요. 그러니 누구도 전문가에게 강요하지 못합니다. 명예나 부와 같은 보상도 없이, 익숙하지도 않은 글쓰기를 하라고는요. 왜 바쁜 전문가들이 언어와 문장을 고민하며 연구 시간만 잡아먹는 일을 굳이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출판계의 무관심과 전문가들의 불필요에 우리나라의 지식은 한쪽 날개가 너무 빈약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한 많은 분들이 좋은 책들을 발굴하고 열심히 지식의 강에 채워 넣었지만, 대부분은 외국 서적을 번역한 것이고 아직도 지식의 총량은 부족하죠. 도대체 무엇이 부족한가,라고 묻는다면 는 이 세상을 제대로 관찰할 도구가 부족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문사철이 있어야 교양인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을 이해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서인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과학 없이는 이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NASA

세상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는데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역사적으로 어떤 위상 속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인간으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다음 단계로 정상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과학을 아는 과학자나 전문가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이해하는 교양인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과학은 온갖 가지로 뻗어나가서, 대부분의 전문가는 자신의 전공이 아니면  전혀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하다 보니, 일반 직장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다른 책을 읽을 여유가  없어 문사철에 문외한인 경우도 있죠. 문사철에 통달한 사람이 과학을 모르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과학이나 전문 분야 하나를 알고 문사철을 몰라도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려면 균형 잡힌 지식이 필요합니다.  발전된 사회의 지식이 풍부하다는 것은 상식이죠.

단 한 사람에게 쓰일지라도 세상을 이해할 도구로써의  지식이 어딘가에는 수집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많은 전문가에 비해 쌓여있는 지식의 양이 적습니다. 이해하고 싶어도 세상을 이해할 도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죠. 그런데도 눈에 보이는 책이나 정보는 엄청나게 많아 보여서 지식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식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는 대신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딘가 수평이 비딱해진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게 되고, 왜곡 현상은 점점 실제 세상과 차이가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문지식, 과학지식은 그렇기에 세상의 품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수집하는 것은 출판 기획자들의 임무겠지만, 사실 출판이란 것도 시장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 자신이 지식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보석의 존재를 모르니 광산의 주인 스스로가 그것을 캐어 자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연구와 논문 쓰기로도 바쁜 전문가들이 굳이 세상을 위해 지식을 내놓아야만 할까요? 물론입니다.  지동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이해하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한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전문 지식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타적인 동기로는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말이 쉽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문 지식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타적인 동기가 아니어도 대중들을 향해 글 쓰는 방법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전문가든 연구자든 성과를 내려면 연구를 해야 하고, 그 연구에는 돈이 들죠. 그런데 그 돈을 같은 분야의 저명한 박사들이 갖고 있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돈줄은 전문 분야는커녕 과학과는 담쌓고 산 것 같은 CEO나, 수포자는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학도 풀지 못할 것이 분명한 고위 공직자가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기까지 수많은 수포자, 과포자 출신의 관리직, 사무직들을 거쳐야 하고요. 그들이야말로 지식의 세계에서 일반인이고 대중이 아닐까요?

따라서 대중과 소통하는 기술 하나쯤 갖고 있으면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지식을 세상에 내놓을 정도의 이타적인 글쓰기는 연구비나 프로젝트를 위한 기획서를 쓸 때도 요긴하겠죠.



과학은 어려운 사실을 쉽게 설명하고
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어렵게 설명한다

                                                  

                                                     -모든 문과들이 경악할 말에 진심이었던,

                                                      양자역학의 부모들 중 1인  Paul Dirac


 전문가들은 비록 비전문 분야에 대해 폴 디랙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만, 수식과 숫자와 공학적인 그래프로 가득한 보고서에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꽤 많지요. 이를 쉬운 글로 고쳐 설명한다면 문사철에만 익숙했던 이들 중 누군가는 그 전문분야의 중요성에 깊이 감동하여 사명감을 갖고 엄청난 지원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쉬운 글로 쓴 전문분야의 글이 많은 사회에서는 그 분야의 의욕 넘치는 후배들을 구하기 쉽습니다. 수능 성적이 아니라, 꿈과 희망과 엉뚱한 포부로 한 분야에 뛰어드는 후배 중에서 어쩌면 몇 명은 노벨상을 타거나 세계 최고의 벤처 사업가처럼 큰 사고를 치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과학자나 전문가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좋습니다.  그 능력이 있다면,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자기 분야의 중요성도 알릴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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