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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 Dec 16. 2020

그게 너를 꽃 피우게 할 거야,

하지만 너를 죽이기도 할 거야

코로나 3차 유행이 생각보다 더 심합니다.

이런 때인데도 사람들은 제각각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우울에 지칠 정도로 스스로 집에 틀어박혀 사회를 지키고, 누군가는 놀기 위해 떠나기도 합니다.

왜 시간을 즐기는 것까지 죄책감이 들게 되었는지, 원망할 거라곤 바이러스 밖에 없네요.


하지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머무는 원인은 공감 능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사태가 나의 일로 느껴지는지 아닌지가 지금 시대의 행동양식을 만드는 것 같아요.

가령, 코로나 확진자 수에 따라 고생하는 얼굴들이, 하루가 다르게 문 닫는 가게들, 셔터 안에서 울고 있을 주인들과 노동자들의 눈물이 가슴에 그대로 전달이 되느냐의 문제...


당장 눈앞에 보는 일들에는 대부분 공감을 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것도 너무 길게 가니 무뎌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공감은 필연적으로 상상력을 키워야 가지게 되는 능력이니까요. 지능이 높은 동믈만이 공감 능력을 갖죠.  내 것이 아닌, 남의 팔다리가 잘라지는 모습에 가슴 깊이 푸른 멍이 드는 인간의 능력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세상을 보는 상상력 지능 덕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블루가 그렇듯이, 공감능력은 병의 원인입니다. 역지사지가 잘 되어 꾹꾹 참든, 실직한 부모의 가정과 그 집 아이의 추운 가난이 못내 아프든.. 힘든 상황에 1년이나 함께 감응(공감)하느라, 우리의 가슴은 너덜너덜 해졌지요.


그래도 이 능력이 있어 생기는 병이 더 낫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들은 맘 편히 사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자칫 소시오/사이코패스의 경계로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전자는 사람이라 부르지만, 후자는 사람 같지 않다 하니까요.


사실, 공감이 원인이 되어 병을 얻는 직업이 예술가입니다. 상상력이 좋다는 말이 기발힌 것을 떠올린다는 의미이기만 하다면 그는 예술가는 아닐 겁니다. 타인의 감정선에 언제든 합선되는, 그런 내면이야말로 예술가의 상상력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좋은 작품에 감동, 즉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공감 ... 그렇죠.

예술가의 정원에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씨앗이며 거름이 이것입니다.

하지만 접지한 데 없이 천지사방에 다 열린 상상력을 견딜 수 있는 인간 개인은 없는 것 같아요.

결국 예술가의 토질을 황폐하게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이 공감인 듯 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라면 이것도 역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시절의 꽃을 준비하면서

죽음이 되어줄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지요.


...

글쎄요 , 변변찮은 예술가 중에는 단 하루라도 흐드러지게 화려한 정원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제든 자신을 내던질 수 있다고 울고 있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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