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위 Nov 08. 2022

편두통이 나에게 준 것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편두통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세 글자씩 나란히 세 묶음. 저 아홉 글자를 보며 나는 지금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몇 번이고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이것 저것 다 쓰고 싶었고, 이것 저것 다 쓰겠다고 번번이 의사를 밝혔더랬다. '작가'라는 이름에 혹해서 과욕을 부렸던 거다. 

그러다가 최근에 며칠동안 2-3일에 한 번씩 반복되는 편두통을 겪으면서 위기감을 느꼈다. 편두통은 알게 모르게 내 삶에 꾸준히 영향을 미쳐오고 있었지만, 삶이 오롯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감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편두통이 자주 오는 시기가 비교적 정해져 있었다. 일주일 동안 다섯 번. 이런 적은 없었다. 다섯 번의 편두통은 예전과 양상이 달랐다. 나는 대개의 경우 편두통이 오기 전에 시각이 훼손되고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을 겪는다. 그런데 다섯 번의 두통 모두 굉장히 강한 시각 훼손 증상이 나타났고, 이러다가 매일 편두통이 오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눈물이 났는데, 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제 어떻게 얼마의 빈도로 두통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몸도 마음도 가라앉았다. 


두통이 오면 적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전조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는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그것을 지속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는 수업을 계속할 수가 없고, 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상태로 걸어서 목적지로 가야 하고, 집에서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가 없게 된다. 

지독한 공포 속에서 한 주를 보내고 이제는 병원에서 새로 처방받은 약의 효과를 기다리고 있다. 


일상을 잘 살고 싶은 마음.


편두통이 오지 않는 날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정말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편두통이 오더라도,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우울에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일상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편두통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두통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우연히 가입하게 된 카페에서 편두통 때문에 고통받는 아홉 살 딸의 이야기를 쓴 엄마의 글을 보았다. 예고 없이 나타나는 앞이 안보이는 전조증상 때문에 아이가 너무 무서워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년도 넘게 편두통 전조 증상을 겪어온 어른인 나에게도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증상은 매번 공포인데, 아홉 살 아이에게 그 고통은 얼마나 클까.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 공포를 갖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하니까, 나는 편두통을 갖고 있지만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마음이 지치지 않게, 주저 앉고 싶어질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나를, 그리고 어디선가 편두통으로 힘겨워 하고 있을 그들을 도닥여 주고 싶다. 

 


가방에 넣고 다니던 이미그란이다. 이미그란은 먹고 나면 심장이 쪼이듯이 아픈 부작용이 있어서 알모그란으로 약을 바꾸었는데, 나는 저 약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두통 전조 증상이 오면 바로 약을 먹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저 약이 내 가방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괜히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편두통, 정말 끔찍하게 지긋지긋하고, 그래도 매번 새롭게 무서운데, 편두통 덕분에 브런치 작가가 되다니. 

기쁘지만 슬프고, 또 슬프지만 기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