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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09. 2022

너란 녀석! 정말 편두통 너란 녀석!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너란 녀석!


나는 편두통을 앓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병원에 갔다가 편두통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편두통은 내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렸지만, 그래도 편두통의 빈도가 아주 잦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럭저럭 한 가정의 일원으로써,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 초까지 무려 네 차례나 편두통 증상이 나타났다. 목요일에는 출근길에 갑자기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는 전조증상이 나타나서 하루 종일 두통으로 괴로워하다가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두통이 사라졌다. 다행히 차를 갖고 오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전 중에 시각이 왜곡되는 증상이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런데 금요일에 퇴근하고 나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잠깐 집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는데 또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이틀 연속으로 두통이 발생한 적은 없는데 심상치 않았다. 시각이 왜곡되어 보이는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급한대로 아이 하원을 친구 엄마에게 맡기고 약을 먹은 후 잠을 청했다. 다행히 두통은 걱정했던 것보다 심하지 않아서 무사히 토요일을 맞을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약속이 있어서 서울에 잠시 다녀왔는데 늦은 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상하게 허기가 졌다. 밥을 잔뜩 먹고 왔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양껏 야식을 즐긴 후에 잤고, 일요일 낮까지 별 문제 없었다. 일요일에는 집 청소를 하면서 둘째랑 놀아주고 있었는데, 둘째가 냄새가 지독한 풍선을 내 코에 갖다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와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데 갑자기 눈 앞에 번쩍 하는 것이 보이더니 다시 전조 증상이 시작되었다. 또 약을 먹고 잤다. 나의 편두통은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그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을 자고 나니 두통의 정도가 좀 덜해졌고, 가족들과 주말 저녁을 함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월요일 퇴근 후에 또 전조증상이 나타났다. 피곤해서 버스에서 잠이 들었고, 내려야 할 정류장이 다가오고 있는데 내리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계속 비몽사몽상태였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정신을 차리고 집 앞에서 내렸다. 동네 길바닥에 낙엽이 수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폭신하다고 생각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또 눈 앞에 번쩍하고 섬광이 비쳤다.네 번째 편두통이었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이라 약을 먹고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 누웠다.


  잔뜩 웅크린 채 누워있는데 무서웠다. 이렇게 매일 매일 편두통이 계속되면 어쩌지. 매일 매일 언제 생길 지 알 수 없는 전조증상과 함께 편두통이 시작되면 어떡하지. 공포가 밀려왔다. 






  오늘 오전 수업만 마치고 병원에 가기 위해서 조퇴를 했다. 나는 어제까지 발생(?)한 네 번의 편두통 증상에 대해서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의사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이었다. 내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자 의사는 50대가 될 때까지는 빈도도, 강도도 더 심해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몇 번 들은 적이 있는 얘기였지만, 50대가 될 때까지 조마조마하면서 이 고통을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자 몸에 힘이 탁 풀렸다. 그래서 궁금한 모든 것을 물었다. 


Q) 요즘 내 삶의 변화는 차로 출퇴근을 하다가 대중교통으로 바꾼 것 정도인데 이것도 편두통에 영향을 미치나?

A) 그렇다. 대중교통에서 나는 냄새가 대표적으로 편두통을 유발하는 트리거 중 하나이다. 편두통은 냄새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다. 


Q) 그렇다면 아이가 가지고 노는 풍선에서 나는 고무 냄새도 트리거가 될 수 있나?

A) 그렇다. 내 편두통이 어떤 냄새에 반응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Q) 편두통이 발생하기 전에 이상하게 허기가 지고, 간절하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긴다. 

A) 그것은 트리거라기 보다 전조증상이다. 갑자기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것도 편두통의 전조증상 중 하나이다. 


Q) 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나?

A) 등산이나 달리기처럼 숨이 차는 운동은 좋지 않을 수 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권한다. 


이 외에도 공복이 길어지거나, 갑자기 탄수화물을 적게 섭취하는 것도 편두통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편두통을 다루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왔다. 편두통을 일으키는 요인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라면이 트리거가 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어떤 회사의 라면을 먹느냐에 따라서 편두통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한다고 한다. 편두통은 일차성 두통인 경우에는 그 원인이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증상이 발현될 때 빠르게 약을 먹는 것만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오전 접수가 끝난 덕분에 오늘 여기저기를 돌다 왔다. 버스를 두 번이나 잘못 탔고, 덕분에 길거리에 떨어진 낙엽을 실컷 밟았다. 네 번의 편두통 속에서 절망하고, 그 안에서도 혹시나 희망은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는 동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산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 여기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나는 내 편두통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편두통 이 녀석은 매번 다른 양상의 전조증상과 두통 증상을 보여준다. 편두통은 치료될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너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잘 다스려서 되도록 자주 얼굴 보지 말고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 요즘 키보드에 꽂혀 있는데, 오늘 만난 신경과 의사 선생님 키보드 소리가 너무 좋았다. 키캡도 빨간색이 적절하게 섞여서 참 예뻤는데, 아마도 굉장히 비싼 키보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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