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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09. 2022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요즘 아이가 즐겨쓰는 말투이다. 어떤 말이든 시작하기 전에, 말이야, 엄마, 그런데 말이야. 이 말을 하고 할 말을 시작한다. 






 그런데.


  많이 쓰지만 어떨 때 이 접속사를 쓰는지 설명하려하니 또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화제를 앞의 내용과 관련시키면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때 쓰는 접속 부사. 흥미로웠다. 대화 도중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 갑자기 화제 전환을 하기는 애매할 때 쓰기 좋은 말이구나. 그래서 아이가 요즘 이 말을 이렇게 많이 쓰는구나. 아이는 매 순간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테니까 말이다.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나는 오늘 또 편두통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편두통이 처음 시작된 건 아마도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머리가 너무 아파서, 약을 먹어도, 손가락을 따도(그때 엄마는 체한 게 틀림없다며 손가락을 땄다), 무엇을 해도 아팠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나자 괜찮아 졌다. 전조 증상이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언제였는지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편두통의 빈도가 유난히 잦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 한동안은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하는데 요 근래 편두통의 빈도가 부쩍 잦아지기 시작하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운전하다가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전조 증상이 오면 안되니 운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는 버스를 환승해서 집으로 갔는데 두시간 좀 덜 걸렸다. 지하철은 너무 힘들어서 아침에는 버스를 두 번 타고 경전철로 환승했는데, 무엇을 타고 가든 역시나 길고도 긴 출근길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두통은 분명 내 삶에 어려움을 주고 있고, 이것은 내가 갖고 있는 장애이다. 내가 공무원이 아니라 사기업에 다니고 있었다면 회사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누구도 건강하지 않은 직원을 뽑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훅 찾아오는 두통. 일주일 동안 5번 전조증상을 겪으면서 매일 매일을 오늘은 괜찮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금만 어지럽거나 눈 앞이 잘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쿵 내려 앉는다. 오늘도 나는 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일을 무리 없이 마치고 퇴근을 하고 싶고, 오늘도 나는 이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을 잘 돌보아야 하는데 두통이 오면 두통이 사라질 때까지는 무엇도 하기가 힘들다. 그러다가 장애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매 순간 어려움을 만나게 될텐데 그들은 그 순간들을 살아내기 위해서 매번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야하는 건 아닐까. 그런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 하루가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는 동안 그들의 삶은 괜찮은 걸까.   


  학교에서 장애이해교육을 하는데 강사님이 단편영화 <대륙횡단>을 잠깐 보여주셨다. 이 영화는 <여섯 개의 시선>  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 개봉한 영화 중 한 에피소드이다. 몇 장면을 보여주셨는데 오래 전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보았는데 다시 보니 장면들이 하나씩 기억이 났다. 


영화 <대륙횡단> 중 한 장면 


  몸이 불편한 주인공이 광화문을 건너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다시 보는데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의 고통을 내가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길을 걷다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보이지 않는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고 어디든 앉을 수 있는 곳까지만 가고 싶다고. 

지독한 두통의 공격을 받고, 나는 편두통이 아닌 다른 고통, 어려움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상을 무사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에 대해서도. 

  두통이 심해지기 전에는 몰랐는데, 갑자기 빈도가 증가하고 난 후에는 출퇴근 길이 힘겹다. 대중교통에서 나는 냄새도 두통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버스를 타면 한껏 예민해져서 꼭 창문을 연다. 두통없이 무사히 출근을 해서 무사히 일을 마치고 무사히 잠드는 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두통 속에 잔뜩 움츠린 날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가을은 깊어지고 있다. 


편두통 환자에겐 강한 빛도 트리거가 될 수 있지만, 그래도 가을의 햇살은 오직 가을만이 낼 수 있는 색을 갖고 있다. 그 햇살을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참 좋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도 아프지 않은 계절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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