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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24. 2022

수능이 끝났다

수능이 끝났다. 


학교에서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는 방송담당이다. 

수능에서도 내 업무는 방송 담당이었다.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행기 착륙도 안하는 우리 나라에서 수능 영어 듣기평가는 몹시 중요한 일이다. 수능이 치러지는 동안 매 시간 타종과 멘트와 영어 듣기평가가 무사하게 방송되는 것, 그것이 내가 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실 써놓고 보면 굉장히 심플한데, 수능을 앞두고 며칠동안 내 삶은 그리 심플하지 못했다. 수능날의 무탈한 방송을 위해서 방송 테스트를 하고 또 하고, 크기 조절을 위해서 종일 학교를 돌면서 음량 체크를 했다. 몸은 다소 고되었지만 사실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타종과 듣기평가도 떨리겠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장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 수능날 두통이 오면 어쩌나였다. 수능날 멘트는 녹음 파일을 구해서 시보기에 다 넣어놓았지만, 갑자기 시보기가 작동하지 않거나 정전이 되거나 하면 시나리오에 써 있는 멘트를 직접 읽어야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편두통이 와서 앞이 보이지 않으면 어쩌지. 자꾸만 마음이 불안해졌다. 지난 주말부터는 편두통을 일으킬 수 있는 어떠한 요인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 어느때보다 규칙적으로 잠자고 규칙적으로 먹고 규칙적으로 생각했다. 


노력의 결과는 헛되지 않았다. 수능 전날까지 편두통은 오지 않았고 이제 수능 당일만 잘 넘기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수능날 내 출근시간이 새벽 5시 반이라는 사실이었다. 최근에 운전이 어려워졌고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는 너무 멀었다. 가족의 양해를 구하고 학교에서 그나마 가까운 지인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수능을 앞 둔 긴장감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서 자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일 편두통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걱정이 깊어지면 잠은 또 멀어지고 잠이 멀어지면 또 걱정이 깊어졌다. 그러다가 아스라하게 잠이 들었고, 알람에 깼다. 택시를 타고 학교로 갔고 수능일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방송실에서 사고 없이 수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마음 졸였다. 다행히 수능은 무사히 끝났고, 편두통도 오지 않았다. 5교시까지 끝나고 모든 수험생이 귀가 하고 운영본부에서 정리가 끝나고, 나도 집으로 갔다. 퇴근 시간과 겹쳐서 지하철에도 사람이 많았고, 광역버스는 유난히 오지 않았다. 한참만에 온 버스는 만석이었지만 꾸역꾸역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몸이 구겨졌다. 가방은 무거웠고 발을 디딜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수능의 흔적들

그렇게 달리고 달려,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과 남편과 하루 동안의 근황을 나누고, 

학교에서 아침에 받은 김밥을 먹었다. 김밥을 다 먹자마자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편두통 없이 수능날이 끝났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빨래를 들고 베란다로 나가는데, 갑자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편두통이 왔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쩌지? 그런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해야할 일은 무사히 마쳤으니까. 빨래를 그대로 내려놓고 약을 먹었다. 베란다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약을 먹으며 잠시 생각했다. 편두통이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 힘든 하루가 예정되어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삶. 힘든 하루가 지나고도 신나게 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삶. 그래도 어쨌거나 수능이 끝났으니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수능이 끝났다. 

수능을 본 모든 이들이 무사히 수능시험을 보았기를.

그리고, 편두통을 앓는 수험생들이 모두 편두통의 공격을 받지 않고 무사히 시험을 마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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