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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Nov 14. 2023

안반데기의 달

엄마는 언제 행복해? (2022.9.29.)


이번 추석에는 대전에도, 부산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코로나가 극성이어서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아이들과 용평으로 갔다. 나무가 여덟 살 때 어린이집 친구들과 별 보러 갔던 안반데기를 네 가족이 함께 가보고 싶었다. 그때 한 살이었던 둘째는 아빠와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안반데기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는 10월이었지만 강릉의 밤은 몹시 추웠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안반데기의 풍경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렇게 황량하지만 아름다운 곳이 있구나. 해가 지고 우리는 별을 기다렸지만, 너무 추웠다. 온 세상이 깜깜했고, 어린 아이들은 춥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지만, 그 밤의 양감과 질감은 묵직하게 우리를 감쌌다. 튼튼이를 낳은 후 소설 습작을 멈췄는데 안반데기에 다녀와서 안반데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더랬다. 안반데기는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4년 전, 안반데기를 향해 걸어가던 길


아직 해가 있을 때 출발했어야 하는데 낮에 실컷 놀았던 둘째가 숙소에서 잠이 든 바람에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에 길을 나섰다. 4년 전에도 안반데기를 향해 가는 길이 꽤 어둡다 생각했었는데 날이 흐려서인지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 조금씩 내려오고 있었다. 아스라하게 해가 남아있는 안반데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안반데기 아래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린 것은 무겁게 주저앉은 거대한 구름과 9월이라고 믿을 수 없는 세찬 바람, 그리고 어둠이었다. 차를 타고 더 올라가보려 했으나 보이지 않는 턱에 차바퀴가 부딪치고 나서 우리는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차만 타면 자는 첫째는 차에서 내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둘째는 세찬 바람에 맞서보다가 이내 내 품을 파고 들었다. 안반데기에서 뚱실하게 떠오른 환하디 환한 달을 보고 소원을 빌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허무하게 무산되었고, 다시 무겁게 내려앉은 어둠을 뚫고 숙소로 돌아왔다.


4년만에 다시 찾은 안반데기

한 살이었던 튼튼이가 다섯 살이 되고 마침내 우리 넷이 함께 안반데기에 왔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4년 전 그날의 고즈넉함 대신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으스스함이었다. 내려서 후다닥 사진을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무엇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이유로 나는 남편과 투닥거렸다. 자신은 사춘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때로 막말도 불사하는 나무는 아빠 엄마가 싸울 때는 잠시 순한 양으로 변신한다. 아이는 어떻게든 중재하려고 애쓰는데, 그 모습을 볼 때면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사소한 이유 때문에 잔뜩 날을 세웠던 마음이 수그러들곤 했다.  


안반데기의 달을 만나지 못한 우리는 뒤늦게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숙소 안 식당에서 급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를 향해 걸었다. 남편과 튼튼이가 앞서 걷고 나는 나무와 느릿느릿 그들을 따라 걸었다. 무엇 때문인지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사소한 것에 화가 나는지를 생각하다가 작디 작은 내 마음에 또 화가 났다. 아직 순한 양의 마법이 풀리지 않은 나무가 나긋한 목소리로 묻는다.    


"엄마는 언제 행복해?"


갑작스럽게 왠 행복? 아이는 왜 갑자기 언제 행복하냐고 묻는 걸까. 행복. 최근엔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최근에는 행복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음, 아침에 출근하는데 차가 덜 막혀서 학교에 일찍 도착했을 때?"


숙고하다가 나온 답이다. 매일 왕복 80키로를 달려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차가 막히지 않아서 생각보다 빨리 학교나 집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참 좋다.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진짜? 그거 밖에 없어?"


정말 그것 밖에 없나? 사실 행복한 순간은 더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 몸이 더 커져버린 나무나 아직은 말랑말랑한 튼튼이를 안을 때도 참 행복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나는 저런 답을 하고 말았다.


"음. 엄마 상담이 필요한 것 같아."


나무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나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에 몇 번 상담을 언급했던 기억이 났다. 나무도 지금이 엄마에게 상담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순한 양이 된 아이가 그때 정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안반데기에서는 보지 못한 달이 휘영청 우리 머리 위에 떠 있었고, 나는 대답 대신 나무의 손을 잡았다. 나무는 내가 내민 손을 거부하지 않았다(평소에는 손을 잡을라치면 펄쩍 뛰면서 난리를 치는데 말이다).  


나무는 자신이 사춘기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그리고 때로는 정말 사춘기 아이처럼 날을 세우기도 하고, 문을 쾅 닫고 들어간 적도 있다. 본인도 어찌지 못하는 마음들이 수시로 찾아드는 시기라 그렇겠지만 추석의 보름달 아래서 행복을 묻는 나무의 얼굴을 보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열두 살 나무. 우리가 함께한지도 12년 째. 이제는 서로의 행복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이상하게 마음이 일렁였다.  


올해 달은 정말 동그랗다고 했다. 과연 달은 정말 동그랬다. 동그랗고 노란 달. 머리 위에 떠 있는 그 달을 보며 아마 우리 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숙소 앞에서 우리는 잠깐 멈추어 서서 달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소원의 모양도 색깔도 저마다 달랐겠지. 그런데 신기하게 소원을 비는 그 순간에 우리 마음은 다르지만 또 닮아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안반데기의 달.

안반데기는 여전히 또 다른 이유로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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