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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위 Jun 25. 2024

빛의 테러, 삶의 축복

편두통과 함께 사는 삶

  이것은 테러다. 이제 겨우 일곱 시를 조금 넘긴 이른 아침인데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창밖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찬란하고 눈부시다. 시릴 만큼 눈부시고, 시리디 시린 그 빛이 뾰족하게 머리를 찌른다. 광역버스 창에 설치되어 있는, 낡고 듬성듬성한 커튼이 빛을 가리고 있지만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부분을 통해 가늘고 센 빛은 맹렬하게 쏟아진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보지만, 정말 눈가리고 아웅이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멍하다. 학교에 도착해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약을 꺼내 먹는다.      


  빛은, 편두통을 유발하는 트리거 중 하나이다. 작년에도 그랬는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데, 올해는 유독 여름 햇살이 이른 시간부터 강하게 쏟아지는 것 같다. 동쪽을 향할 때마다 쏟아지는 빛 때문에 운전을 끊었는데 버스를 타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역시 방법은 지옥철 뿐인가. 


  편두통으로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편두통 증상이 있었지만 최근에 갑자기 빈도가 잦아졌고, 덕분에 삶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어제 본 신경과 의사들이 유튜브에서는 편두통 환자는 두통을 느끼는 역치가 다른 것이고, 그런 뇌를 갖고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평생 관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편두통에 안 좋은 음식은 먹지 말고, 잘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술과 커피는 마시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삶. 그것이 편두통 환자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라고, 편두통을 앓지 않는 신경과 의사 둘이 웃으면서 얘기했다. 

  좋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이제 살아보려고 한다. 편두통 약은 두통이 오기 직전에 먹어야 효과가 있는, 일시적으로 뇌혈관을 수축시켜 두통을 막는 약이다. 일시적으로 통증을 없애주지만 장기적인 치료 효과는 없다. 그런데 이 약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대신 그만큼 무서운 약이란다. 인위적으로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이니 얼마나 쎈 약이겠는가. 그래서 한 달에 8회 이상 먹으면 안된다고 한다. 약한 두통이 올 때는 약을 먹지 않고 버텨보려고 하지만, 학교에서 일하는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약을 먹게 된다.      


  어떻게든 약을 먹는 횟수를 줄여 보려고, 우선 세 가지를 끊었다. 커피와 술과 운전. 삶의 즐거움을 위해 필수 요소인 이 세 가지를 끊고 4주째 버티고 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느낄 수 없었던 일상의 소소한 기쁨은, 의외로 3주가 지나면서 조금씩 자연스럽게 잊으며 살고 있다. 몸에서 카페인이 빠져나가는 대신 찾아온 몽롱함도 나쁘지 않다. 대신 카페인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고 때때로 녹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술은, 정말 한 달 이상 마시지 않았다. 이 역시 잘 버티고 있었는데 지난 토요일 지원단 워크숍에 갔다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맥주 500CC를 들이켜 버렸다. 맛있었다! 여름날 저녁의 맥주. 참 맛있었다! 이 맛에 술을 먹지. 행복하게 웃으며 집에 왔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아침에 어김없이 편두통이 찾아왔다. 3주 정도 편두통 없이 잘 버티고 있었는데. 조금만 참을 걸 생각하다가도,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의 기쁨을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행복했으니 됐다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못먹겠지.)

  운전은, 끊고 나서 몸이 힘들어졌다. 몸이 힘들고 피곤하면 편두통이 자주 오는데, 또 운전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인 나에게 운전은 정말 딜레마다. 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었던 학교를 이제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20분 동안 간다. 다시 긴 출근길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운전을 하면서 갑자기 전조 증상이 와서 운전 중 앞이 잘 안보이면 어쩌나 걱정하는 일이 없어졌고, 운전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 껏 밤을 새고, 술과 커피를 마시고, 때때로 무리도 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다시 생각한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하고 술과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무리하는 것을 최대한 지양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편두통이 오지 않은 순간에 누릴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은 특권인지 모른다. 아프지 않을 때는 알기 힘든 것 같다. 몸의 구석구석이 건강하게 기능하고, 내 의지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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